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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强澤俊       본관 : 충주强氏       작성일 : 2015년 03월 16일(월) 13:53
  • 제 목 : 역사적 문헌에 나온 충주 强氏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5756


    강수는 중원경(中原京, 충북 충주) 사량(沙梁) 사람으로 아버지는 나마 석체(昔諦)이다. 그 어머니가 꿈에 뿔이 있는 사람을 보고 임신하여 낳았는데 머리 뒤쪽에 불거진 뼈가 있었다. 석체가 아이를 안고 당시의 현자라고 알려진 이에게 가서 물었다.

    “이 아이의 두골이 이렇게 생겼으니 어떻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내가 들으니 복희씨(伏羲氏)는 범의 형상이었고, 여와씨(女媧氏)는 뱀의 몸이요, 신농씨(神農氏)는 소의 머리 모양을 하였고, 고요(皐陶)는 입이 말과 같았다 하니, 성현은 다 같은 류로 그 생김새도 역시 범상치 않은 데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아이의 머리를 보니 사마귀가 있는데, 관상법에 얼굴의 사마귀는 좋지 않지만 머리의 사마귀는 나쁘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 아이는 필시 기이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强首 中原京沙梁人也父昔諦奈麻 其母 夢見人有角 而妊身及生 頭後有高骨 昔諦以兒就當時所謂賢者 問曰 此兒頭骨如此 何也 答曰 吾聞之 伏羲虎形 女媧蛇身 神農牛頭 皐陶馬口 則聖賢同類 而其相亦有不凡者 又觀兒首有黶子 於相法 面黶無好 頭黶無惡 則此必奇物乎

    아버지가 돌아와 아내에게 일렀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니 잘 길러서 장차 나라의 인재로 만들어야 할 것이오.”

    강수는 자라면서 스스로 글을 읽을 줄 알고 문장의 뜻에 통달하였다. 아버지가 그의 뜻을 알아보고자 하여 물었다
    “너는 불도를 배우겠느냐, 유학을 공부하겠느냐?”
    “제가 듣기로는 불도는 세속을 떠난 가르침이라 합니다. 저는 인간세계에 사는 사람인데 어찌 불도를 공부하겠습니까? 유가의 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너 좋을 대로 하여라.”

    그리하여 스승에게 나아가 『효경(孝經)』, 『곡례(曲禮)』, 『이아(爾雅)』, 『문선(文選)』을 읽었다. 배운 것은 비록 얕았지만 깨달은 바는 한층 고상하고 원대하여 당대의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마침내 벼슬길에 나아가 관직을 두루 거쳐 당시의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父還謂其妻曰 爾子非常兒也 好養育之 當作將來之國士也 及壯 自知讀書 通曉義理 父欲觀其志 問曰 爾學佛乎 學儒乎 對曰 愚聞之 佛世外敎也 愚人間人 安用學佛爲 願學儒者之道 父曰 從爾所好 遂就師讀孝經曲禮爾雅文選 所聞雖淺近 而所得愈高遠 魁然爲一時之傑 遂入仕歷官 爲時聞人

    강수가 일찍이 부곡(釜谷)의 대장장이 집 딸과 정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이 매우 돈독하였다. 나이 20세가 되자 부모가 고을의 처녀들 가운데 용모와 행실이 좋은 자를 중매하여 아내로 삼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강수는 두 번 장가들 수 없다고 하여 사양하였다. 아버지가 노하여 말했다.

    “너는 세상에 이름이 나서 나라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미천한 여자를 배우자로 삼는다면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강수가 두 번 절을 드리고 말했다.
    “가난하고 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찍이 옛 사람의 말에 ‘고생을 같이 했던 아내는 쫓아내지 아니하고, 빈천한 시절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들었으니, 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는 없습니다.”

    强首嘗與釜谷冶家之女野合 情好頗篤 及年二十歲 父母媒邑中之女有容行者 將妻之 强首辭不可以再娶 父怒曰 爾有時名 國人無不知 而以微者爲偶 不亦可恥乎 强首再拜曰 貧且賤非所羞也 學道而不行之 誠所羞也 嘗聞古人之言曰 糟糠之妻 不下堂 貧賤之交 不可忘 則賤妾所不忍棄者也

    태종대왕(太宗大王)이 즉위하자 당의 사신이 와서 조서를 전했는데, 그 가운데 해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왕이 그를 불러 물으니, 그가 왕 앞에서 한번 보고는 설명하고 해석하는데 의심스럽거나 막히는 데가 없었다. 왕이 놀랍고도 기뻐 서로 만남이 늦은 것을 한탄하고 그의 성명을 물었다. 그가 대답하여 아뢰었다.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며 이름은 우두(牛頭)입니다.”
    왕이 말했다.
    “경의 두골을 보니 强首 선생이라고 부를 만하다.”

    왕은 그에게 당 황제의 조서에 감사하는 회신의 표를 짓게 하였다. 문장이 세련되고 뜻이 깊었으므로, 왕이 더욱 그를 기특히 여겨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任生)이라고만 하였다.

    강수가 일찍이 생계를 도모하지 않아 집안이 가난하여도 태연하게 여겼다. 왕이 담당관에게 명하여 해마다 신성(新城)에서 거두는 곡식 1백 섬을 주도록 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이 말했다.
    “강수가 문장 짓는 일을 스스로 맡아서, 서한으로 중국 및 고구려, 백제 두 나라에 우리 뜻을 잘 전할 수 있었으므로 우호를 맺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선왕이 당에 군사를 요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이 비록 군사적 공이기는 하지만 문장의 도움도 있었으니, 강수의 공로를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그리고 그에게 사찬의 지위를 주고 녹봉을 높여서 매년 곡식 2백 섬으로 하였다.

    及太宗大王卽位 唐使者至 傳詔書 其中有難讀處 王召問之 在王前一見說釋無疑滯 王驚喜 恨相見之晩 問其姓名 對曰 臣本任那加良人 名牛頭 王曰 見卿頭骨 可稱强首先生 使製廻謝唐皇帝詔書表 文工而意盡 王益奇之 不稱名 言任生而已 强首未嘗謀生 家貧怡如也 王命有司 歲賜新城租一百石 文武王曰 强首文章自任 能以書翰致意於中國及麗濟二邦 故能結好成功 我先王請兵於唐 以平麗濟者 雖曰武功 亦由文章之助焉 則强首之功 豈可忽也 授位沙飡 增俸歲租二百石

    신문대왕(神文大王) 때에 이르러 죽으니, 장사 지내는 비용을 나라에서 제공하였다. 옷가지와 피륙을 더욱 많이 주었는데 집안 사람들이 사사로이 가지지 않고 모두 불사(佛事)에 바쳤다. 그의 아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대신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왕에게 청하여 곡식 1백 섬을 내려주었다. 그의 아내는 사양하며 말했다.

    “저는 미천한 몸으로 입고 먹는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다 보니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홀몸이 되었는데 어찌 감히 다시 두터운 대우를 받겠습니까?”

    끝내 받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신라고기(新羅古記)』에 “문장은 강수(强首),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번(骨畨)이다.”라고 하였는데, 제문 이하의 사람들은 사적이 유실되어 전기를 만들 수 없다.

    至神文大王時卒 葬事官供其賻 贈衣物匹段尤多 家人無所私 皆歸之佛事 其妻乏於食 欲還鄕里 大臣聞之 請王賜租百石 妻辭曰 妾 賤者也 衣食從夫 受國恩多矣 今旣獨矣 豈敢再辱厚賜乎 遂不受而歸 新羅古記曰 文章則强首帝文守眞良圖風訓骨
    畨帝文已下事逸 不得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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