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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안택수       본관 : 광주안씨       작성일 : 2015년 05월 01일(금) 16:49
  • 제 목 : 죽산안씨(구)는 거짓족보를 만들어 광주.순흥 안씨를 모독하고 있다.
  • ★. 고찰한 문헌자료:

    가. 죽산안씨족보: 1976년죽산안씨대동보. 1999년죽산안씨대동보. 1917년(丁巳)죽산안씨세보.1923년(癸亥)죽산안씨세보.
    나. 역사서: 삼국사기(신라본기). 고려사. 동사강목. 신당서. 자치통감.
    다. 죽산안씨측 자료: 안씨원류(‘05.8.27.죽산안씨대종회). 죽산안씨대종회보 7.8.10호(죽산안 씨대종회.‘00.3.31. ’00.12.31. ‘05.5.).

    죽산 광주 죽성안씨의 3형제를 고증하는 문헌과 고성이씨 득성유래(‘07.4.8.죽산안씨대종회장 안국승씨가 제공한 문건).
    라. 종합계보류서: 씨족원류(조종운 1680년찬).청구씨보. 만성대동보. 만가보. 조선씨족통보(윤창현 1924년찬). 한국족보대전.

    성씨의 고향.
    마. 백과사서류: 대동운부군옥(권문해. 1582년간). 증보문헌비고(1908년 대한제국홍문관).

    1. 죽산안씨 시조와 시조의 선계(先系)는 허구다.

    죽산안씨는 시조의 아버지가 중국의 당나라 종실사람 이국정(李國貞)의 아들 이원(李瑗 )이라 하는데.

    당나라 종실사람 국정의 아들은 이기(李錡). 이일(李鎰). 풍사(豊士). 풍기(豊器).로 4명이 있으나

    두 아들은(풍사.풍기) 국정이 사사명(史思明)의 반란에 죽임을 당할 때 같이 죽었고.

    이기는 68세 때인 당헌종 원화2년(807년)에 반역의 죄로 그 아들 사회(師回)와 함께 처형을 당한다.
    한사람 남은 아들 이일(이기의 아우)은 국정이상의 선조가 당나라의 공신이므로 그 제사를 받들도록 용서를 받아

    벌을 받지 않고 살게 하여 준다.
    즉, 이원이라는 사람은 국정의 아들이 아니므로, 당나라 종실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니 죽산안씨대동보는

    위보(僞譜.거짓족보)임을 처음부터 자백(自白) 한다.
    또한, 고성이씨(固城李氏)시조인 이황(李璜)이 이원의 아우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2. 죽산안씨측 소위 죽산안씨동원보 라는 기록의 허위.

    이원. 이황이 형제로 당 헌종 원화2년(신라 애장왕7년. 정해. 807년)에 東으로 와서 송악산 아래에 살면서,

    신라 헌덕왕7년. 헌덕왕14년에 소요, 반란에 참전한 전공을 말하나, 역사사실과 전혀 부합치 아니하며.
    이 전공으로 이원이 안씨성(安氏姓)을 받았다하나(賜姓) 역사사실에 없는 허위이며.


    이원의 아들 3형제가 신라 경문왕4년 갑신외란(甲申外亂)에 난을 평정한 공로가 있다하나,

    경문왕4년에 외란이나 왜란 같은 것도 없었으니 허위이다.
    허위의 공로로 이름을 바꾸고, 죽산군(竹山君). 광주군(廣州君). 죽성군(竹城君)으로 봉군(封君)하였다는데

    신라 경문왕 당시에 죽산. 광주. 죽성등의 지명(地名)이 없었고. 신라 당시 일반백성에게 봉군하는 제도 자체가 없으니 다 거짓이다.

    3. 죽산안씨 족보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죽산안씨는 죽산안씨 두 문중으로 준(濬)과. 영의(令儀)를 각각의 시조로 두 개의 죽산안씨로 이어오다가. 준(濬)이 시조인 죽산안씨

    가 죽산안씨세보(1923년 癸亥)에서 죽산안씨라는 안윤채가록(安潤采家錄)이라 하면서 중국사람 이원이 동(東)으로 온 일과 안방준

    (安邦俊)과 국보(國輔).국필(國弼). 두사람이하 4-6인의 가공인물을 자손이라고 기록하고는 범례(凡例)에다 " 믿지 못 한다(尙難徵

    信)"라고 그들 스스로도 의심하였다.

    또, 죽산안씨 준계(濬系)는 처음 족보(1744년 甲子)를 간행할 때 조종운의 씨족원류(氏族源流)를 베껴다 기본으로 하고 가승등을

    참고하였다고 그 서문과 범례에서 분명하게 기록하고 고려 중기때 사람 안준(安濬.)을 시조로 삼았다.


    또 다른 죽산안씨인 영의계(令儀系)는 1805년(乙丑)에 처음족보를 간행하는데 안성흠(安聖欽)이 서문을 썻는데 영의(令儀)를 시조로

    하였다고 썻다.

    이같이 죽산안씨 두문중은 시조를 준. 영의로 하여 동본동성(同本同姓)이나 시조가 다른 문중으로 1744년. 1805년 이후 각각 씨족사를

    이어온 것이 분명하다. 준계는 1744년이후 1960년까지 4회, 영의계는 1805년이후 1965년까지 7회로 족보를 각각 간행하였다.

    두 죽산안씨는 각각의 시조로 한 문중이 어떤 필요가 있는지, 조선씨족통보. 증보문헌비고의 기록과 1923년(癸亥) 죽산세보의 안윤채

    가록을 각색(刻色)하여 1976년(丙辰)에 죽산안씨대동보를 만들며 이원이란 가공인물의 아들이라는 역시 가공인물인 안방준(安邦俊)을

    그 범례 첫머리에 처음으로 안방준(安邦俊)을 시조로 한다고 기록하고 두 문중을 하나로 합쳐 족보를 만든것이다. 여기에 종전의 시조

    준과 영의는 7세.9세 후손이 되어버렸다.


    이어서 대동보를 간행한지 22년만인 1999년(己卯)에 다시 대동보를 만들면서 1976년 대동보기록의 허위부분을 보완한다면서 이원(李

    瑗)이 중국 당(唐)나라 종실사람(宗室. 당나라의 황제의 친족)인 이국정(李國貞)의 아들이라고 결정적인 거짓을 만들어냈다.

    4. 기타 주요기록의 허점.

    또, 죽산안씨의 위보조작(僞譜造作)에 근거로 된 안윤채가록(安潤彩.采家錄)을 제공한 죽산안씨 사람 안윤채(安潤彩)가 죽산안씨족보

    (1917. 1923. 죽산안씨세보)의 자손록(子孫錄)에 이름이 없다.그러므로 안윤채라는 사람도 역시 가공의 인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선씨족통보에서. 안윤채가 말하는 려말어본고보(麗末御本古譜). 려말세보(麗末世譜)라는 이름의 족보서가 1923.4년에 등장하는데

    불과 90여년이 지난 지금은 없으니 거짓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죽산안씨의 고려말 유명한 고관인 안극인(安克仁). 조선조 초 안맹담(安孟聃)등의 기록 어디에도 그들 시조가 안방준이라고 한 것이

    없다.

    5. 죽산안씨는 거짓족보에 그 계통에 전혀 관련이 없는 광주안씨와 순흥안씨의 시조를 가공인물 이원의 둘째아들로 11세 후손으로 기록

    하였으니 다른 성씨의 시조를 모독하고 그 후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적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6. 그러므로 죽산안씨는 그 족보(1976년의 죽산안씨대동보. 1999년의 죽산안씨대동보)를 전부 회수하여 폐기하거나, 그 족보들이 거짓된

    것임을 한국사회에 공표하고 공증(公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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