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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반씨(光州潘氏)
    유래
    •  시조 : 반충(潘忠)
      시조 반충(潘忠)은 거제반씨(巨濟潘氏)의 시조 반부(潘阜)의 6세손으로 정헌대부 및 공조전서를 역임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태조 1)에 개국원종공신에 녹훈(錄勳)되었고, 해양군(海陽君) 광주백(光州伯)에 봉군되면서 광주반씨로 분파되었다. 반충(潘忠)의 자(字)는 평중(平重) 또는 공직(公直)이며,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인물
     반석평(潘碩枰) : 시조 반충(潘忠)의 증손자 반서린(潘瑞麟)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한 후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및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반인후(潘仁後)는 반석평의 손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고 호조정랑, 군자감첨정을 지냈다.

     반기문(潘基文) : 반석평의 후손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8대 유엔사무총장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반윤위(潘尹衛, 1629 己巳生) : 문과(文科) 숙종16년(1690) 식년시 병과(丙科)
     반석평(潘碩枰)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병과(丙科)
     반윤기(潘潤沂, 1617 丁巳生) : 문과(文科) 인조26년(1648) 식년시 병과(丙科)
     반혼(潘渾, 1555 乙卯生) : 무과(武科) 선조13년(1580) 별시 병과(丙科)
     반몽설(潘夢說)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반인후(潘仁後, 155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삼등(三等)
     반윤기(潘潤沂, 161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4년(1646) 식년시 삼등(三等)
     반계영(潘啓榮, 164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4년(1678) 증광시 삼등(三等)
     반석평(潘碩枰)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9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4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세거지
    반석평이 청주 율봉찰방에 있을 때 근처를 왕래하면서 길지를 찾다가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옛 마피동과 보천리 견두산을 발견하여 택해 두었다가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아우 반석권(潘碩權)에게 알려주었고, 반석권이 거기에 정착하고 세거하면서 음성이 광주반씨의 주요 세거지가 되었다.

    광주반씨는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일원에 150여 호가 살고 있다. 특히 보천리 개미산 아래와 상당리 행태에 20여 호가 세거하고 있으며,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이 이곳 원남면 상당리 행태 출신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상당리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주(光州)는 전라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시대에는 무진주(武珍州)이며 신라시대에 이르러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고쳤다. 892년(진성여왕 6)에는 견훤(甄萱)이 이곳에 후백제를 세워 도읍을 정하기도 하였으나, 940년(고려 태조 23)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고 군현을 정비하면서 무진주를 광주(光州)로 개편하고 도독부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관제개혁 때 해양현(海陽縣)이라 불렀고 1259년(고종 46) 기주(冀州: 冀陽州)라 고쳤다가 1275년(충렬왕 1) 다시 무주로 개칭하였다. 1310년(충선왕 2)에 화평부(化平府)로, 1362년(공민왕 11)에는 무진부(武珍府)로, 1373년(공민왕 22)에 이르러 광주목(光州牧)으로 개편되었다. 1430년(세종 12)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451년(문종 1)에 다시 광주목이 되고, 1489년(성종 20)에는 광주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501년(연산군 7) 광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광산현(光山縣)으로 편입되었다가 1634년에 다시 광주목으로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羅州府) 관할의 광주군(光州郡)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의 도청이 위치하면서 당시까지 전라도 남부지방의 중심지였던 나주를 대신하여 전라남도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11년 광주면으로 신설되었고, 1935년 광주읍(光州邑)은 부(府)로 승격되었고, 광주군은 광산군(光山郡)이 되었다.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광주시가 되고 1986년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1988년에는 송정시와 광산군을 흡수하여 광산구를 신설하였고, 1995년 광주광역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광주반씨는
    1985년에는 총 1,312가구 5,416명,
    2000년에는 총 2,031가구 6,66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