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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장씨(牙山蔣氏)
    유래
    •  시조 : 장서(蔣壻)
      '蔣'은 원래 중국의 옛지명으로 지금의 여남현이다. 이곳을 주공의 아들 백령이 영지로 받고 지명을 그대로 성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장씨의 시조 장서(蔣壻)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의하면 중국 송나라 신경우위 대장군으로 금(金)나라의 횡포가 심하자 평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선대에게 물려받은 영토를 한치라도 남에게 주어서는 안된다.'며 맞서다 뜻대로 안되자 고려 예종 때 배를 타고 충남 아산에 도착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좌복야 박인량과 재보 위계정이 함께 장서가 아산에 와있는 사실을 예종에게 알리자 왕이 장서를 아산군에 봉하고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하였다.

      - 묘소는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있다.
    인물
    - 장숭(崇) : 5세손. 군기감 판사를 지냈다.
    - 9세손 장성길(成吉), 장성발(成發), 장성휘(成暉), 장성미(成美), 장성유(成裕) 5형제의 판전서(判典書)가 유명하다.
    - 장영실(英實) : 10세손. 조선 세종 때의 유명한 과학자로서 1434년(세종 16)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발명한 것을 비롯하여 세계 최초의 우량계(雨量計)로 알려지는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를 발명(1441)하였으며, 그 밖에도 해시계(日晷)와 혼천의(渾天儀)를 제작하는 등 과학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명원(蔣明遠) : 무과(武科) 중종35년(1540) 식년시 병과(丙科)
     장원(蔣○)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장승우(蔣承瑀, 1645 乙酉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장후(蔣○)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년(1507) 식년시 삼등(三等)
     장용규(蔣龍圭, 1808 戊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2년(1861) 식년시 삼등(三等)
     장희백(蔣熙伯, 1643 癸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4년(1678) 증광시 삼등(三等)
     장후(蔣○)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년(1507) 식년시 삼등(三等)
     장해주(蔣海周, 1801 辛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1년(1874) 증광시 삼등(三等)
     장진덕(蔣鎭德, 1816 丙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년(1850) 증광시 삼등(三等)
     장방한(蔣邦翰, 1616 丙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3년(1652) 증광시 이등(二等)
    등 모두 2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무과 3명, 생원진사시 7명, 역과 2명, 의과 4명, 율과 1명, 주학 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항렬자

    •  기1
      26世
      (水변)
      27世
      (木변)
      28世
      (火변)
      29世
      (土변)
      30世
      (金변)
      31世
      (水변)
      32世
      (木변)
      33世
      (火변)
      34世
      (土변)
      35世
      (金변)

       기2
      26世
      (金변)
      27世
      (水변)
      28世
      (木변)
      29世
      (火변)
      30世
      (土변)
      31世
      (金변)
      32世
      (水변)
      33世
      (木변)
      34世
      (火변)
      35世
      (土변)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7世孫은 2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
    아산(牙山)은 충청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아술현(牙述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陰峰縣: 陰岑縣)으로 개칭하였고, 탕정군(湯井郡: 溫陽)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인주(仁州)로 고치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천안에 소속되었다가, 후에 아주(牙州)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아산현으로 개칭하였고, 1459년(세조 5)에 이르러 아산현을 온양군·신창군·평택현 등에 분속하였다가, 1464년 아산현으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아산군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 아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온양·아산·신창의 3개 군을 통합하여 아산군이라고 칭하고 12개 면을 두었다. 1941년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하고,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하여 군에서 분리되었다. 1987년 배방면 공수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고, 탕정면 구령리가 배방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신동 일부가 온양시에 편입, 염치면 석정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다. 1990년 염치면을 염치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1월 온양시와 아산군이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의 아산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아산장씨는
    1985년에는 총 3,921가구 16,005명,
    2000년에는 총 5,557가구 17,69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