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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곡마씨(上谷麻氏)
    유래
    •  시조 : 마귀(麻貴)
      시조 마귀(麻貴)는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원병(援兵)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던 명(明)나라 제독(提督)이다.

      마귀(麻貴)는 회회국(回回國)의 왕이었던 마립(麻立)의 원손으로 포정사(布政使) 마록(麻祿)의 아들이며, 자는 명회(溟回), 호는 이천(而泉), 시호는 충무후 (忠武侯)이다.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마귀(麻貴) 장군은 명나라가 파견한 구원병의 제독(提督)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왔다. 그 해 12월 도원수 권율(權慄)과 합세하여 울산에 내려가서 도산성(島山城)을 포위공격을 하였으나 적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왜군에게 패하여 경주로 후퇴하였다.

      1598년(선조 31) 만세덕(萬世德)이 거느린 14만 원군을 따라 들어와 또 동래로 내려가 도산성을 공격하였다. 조선에서 뛰어난 용병술로 도처에서 왜적을 무찔러 국가 위기 회복에 큰 공을 세우고, 왜란이 끝나자 1599년(선조 32) 봄에 본국인 명나라로 돌아갔다. 마귀 장군의 아들 마승은(麻承恩)은 대동초병관을 지냈으며, 손자 마암(麻巖)은 조부와 함께 정유재란에 참전한 후 1619년에 후금(後金)과의 싸움인 심하 전투에서 총병관으로 활약하다가 순절하였다.

      마귀의 증손자 마순상(麻舜裳)이 남경통판겸 조병독량사로 산동성 등주 및 묘도(廟島)의 군량을 배를 타고 감독하다가 1627년(인조 5년) 9월에 풍랑을 만나 3일만에 황해도 풍천에 이르렀는데 함께 탔던 29명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아 조선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마순상은 풍천에서 홍주를 거쳐 전라남도 광주군 외거면 용산리에 이주하여 함참현감 강덕용(姜德龍)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마봉직(麻蓬直)을 두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 직예성
    중국 상곡(上谷)으로 지금의 직예성(直匠省)에 속한 지명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상곡마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21가구 6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