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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지씨       본관 : cndwn       작성일 : 2006년 09월 12일(화) 17:01
  • 제 목 : 충주지씨 수정 좀 해주세요
  • 한국 지씨의 유래
    삼국유사의 ‘신라 시조 박혁거세편’을 보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던 육촌(六村) 중 진지촌(珍支村)의 촌장이 지백호(기원전 57년 전후)라 나와있다.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신라 고대사에 보면 신라 51년(기원전 7년) 신라 시대에 지충강(신라개국공신)이 8학사의 일원으로 조정대신에 역임되었으니 곧 고관대작 재상직이란 말이다. 이렇게 지백호의 후손도 재상직을하며 대를 이었음이 증명된다. 그 후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지씨가 경주 정씨로 성을 하사받았고 곧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다. 하지만 524년이 지난 무열왕 시대에도 계속 지백호라 호칭된 것으로 미루어 그의 후손 중 계속 지씨를 사용한 후손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이 사실들은 삼국유사의 내용과 박정희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신라시대의 문물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학술조사단에 의해 숭덕전 서장에서 발굴된 것이다.

    우리들이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신라 고적에서 많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사실 중에 지가(池家)에 대한 고대 자료가 있다는 것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池門이 그동안 편수 간행된 문헌지와 족보에는 고려 광종때 지경 선생이 시조로 처음

    오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백호와 지충강 선생은 알려진 시조 지경선생 보다 1000년 전에 신라에서 고관대작의 재상직에 있었으니 필시 그 후손들이 국내에서 대를 이었으리라. 또 봉주지씨와 경주정씨와 충주지씨의 혈연관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도 고대는 소상히 증빙할 수 없듯이 지가의 역사도 또한 소상하게 고증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에서도 서술하였듯이 충주 지씨의 시조인 지경은 중국 당나라 때인 서기 903년 10월 15일에 태어나셨다고 하며, 중원홍농(中原弘農) 사람으로 자는 자운(自雲)이요, 호는 암곡(巖谷)이니, 송의 태조가 천하를 통일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시절에 송나라의 태학사(太學士)란 벼슬에 계시면서, 새 나라의 문물제도를 구비하는데 노력하시다가 사신으로서 고려에 오시게 되었다. 그때가 고려의 제4대왕 광종 2년(서기951년)인데, 고려가 개국된지 40년 밖에 되지 않아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고 있던 때이라, 고려 조정에서는 송나라에서 오신 시조할아버지의 식견과 경험이 긴요하던 때였다. 그래서 시조할아버지께 고려에 그냥 눌러 계실 것을 간청하였고, 고려인들이 새로운 학문과 제도를 받아들이려는 진지한 자세에 감동하시어 본국의 승인을 얻어 이를 쾌히 승낙하시니 이 때가 광종 11년(서기960년)이었으며 여기서부터 충주지씨(忠州 池氏)가 시작된다. 그 후 시조 지경은 고려초기의 미비한 문물제도를 정립하시어 많은 공을 이루시니 조정에서는 위에서 세 번째 차례인 "금자광녹대부(金紫光綠大夫)"라는 높은 벼슬을 내리고, 지금의 수상급에 해당하는 "태보평장사(太保平章事)"라는 직위를 내리셨다. 태보란 삼사의 하나로 임금의 고문으로 국가 최고의 명예직이며, 평장사는 내사시낭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를 이름인데 오늘날 수상 급에 해당되는 최고 벼슬로 고려의 문하부에 속하였다. 고려 목종 6년 서기 1003년 9월 9일에 향년 101세로 서거하시니, 시호 (諡號 ; 功이 많은 신하가 죽은 뒤에 왕이 내려주는 호)는 선의공(宣懿公)이다.

    충주를 본관으로 정하게 된 것은 시조할아버지의 5세손 되는 지종해(池宗海)께서 고려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란 높은 벼슬을 지내시고 식읍(공이 많은 신하에게 어느 고을을 맡겨 군(君)으로 봉하였기로 이로부터 충주가 본관(本貫)이 된 것이다.

    충주지씨 파 크게 11파(대파)가 있으며 소파(40여개파)가 있습니다.
    충주지씨 크게 대파 11파가 갈려졌다
    충의군파,충무공파,충의공파,감찰공파.판관공파,주서공파,태학사공파,판형공파,주서명천공파, 봉사영흥공파,낭장공파가 있다.
    그중 충의군파, 충무공파, 충의공파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으며,전체인구가 특히 충의군파가 전체 충주지씨의 80%를 차지한다.
    고려에 36명이 정승에 버금가는 평자사의 고위직을 역임했다. 조선에 문과급제자 12명, 진사 75명과 많은 무장을 배출하였는데, 대부분 충의군파에서 나왔다.
    충주지씨는 특히 고려조에 명문거족으로 융성을 누렸다. 대조적으로 조선조에서는 재야의 사림(士林)으로 孤高(고고)한 선비가의 전통을 세워왔다. 충주지씨의 융성을 말해주는 것이 「11대 36 평장사(平章事)」이다.
    시조 경(鏡)과 그분의 두 아들 해관(海貫), 도관(道貫)을 비롯, 16세까지 4백여년에 11대 36명이 정승에 버금가는 평자사의 고위직을 역임했다.
    충주지씨는 조선조 5백년동안 문과급제자가 11명 뿐, 벼슬보다는 숨은 선비 가문의 전통을 꿋꿋하게 지켜온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世宗朝(세종조)의 池開(지개)(繕工監직장)와 그 후손들의 8대 9진사 등 진사만 75명을 배출하여 학문의 전통과 양반의 지체를 이어갔다. 충주지씨는 21대손에서 40여파가 분파되었다.
    현감공파에서는 송촌 지석영선생과 백련 지운영, 백산 지청천(이청천) 등이 있다.
    충성군 지계최장군 이분이 충성군파로 분파되었다.
    지씨는 고려시대에 오랫동안 중앙 정계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그 중 두드러진 인물로는 공민왕 때 서북면지병마사로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쳐 1등공신에 책록된 용수(龍壽), 우왕 때 서북면도원수가 되고 다시 문하찬성사에 오른 윤(奫),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여 충원부원군에 봉해진 용기(湧奇)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여해(汝海), 도원수 장만(張晩) 휘하에서 활약한 계최(繼 ), 병자호란 때 활약한 덕해(德海) 등이 있다.
    근대의 인물로는, 한국에 우두법(牛痘法)을 처음으로 보급한 의학자 석영(錫永)을 비롯하여 그의 형 운영(運英)은 서화가(書畵家)로 유명하며, 또 독립운동가로 청천(靑天:일명 李靑天) ·하영(霞榮) 및 의병장 홍문(弘文)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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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하 상세한 문헌 감사합니다 2008.10.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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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충주지씨 수정 좀 해주세요... [1] 지씨 cndwn 06.09.12 3546
    1    Re..충주지씨 수정 좀 해주세요...... 지승재 충주지씨 17.01.26 1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