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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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김대중
ㆍ본관 : 옥천김씨
ㆍ작성일 : 2009년 05월 07일(목) 13:26
제 목 : 옥천김씨 유래 좀 제발 등록해주라
[옥천김씨대동보]에 의하면 도시조 김흠의 선조는 원시조 신라의 개국공신 지충강의 후손이라고 한다.
도시조 김흠(지흠)은 당 태종때 상서 좌복야 고구려 정벌을 반대하고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옥천에 정착한 후 신라 태종무열왕때에 벼슬이 좌승상에 이르렀다. 그후 신라 문무왕때에 지흠이 김씨를 하사하고 옥천군으로 봉하였다. 옥천를 본관으로 하였으나 후손의 기록이 없어져서 고려 초에 삼한벽상 일등공신인 김소청를 시조로 하였다.
계보상에 나타난 옥천김씨의 시조는 고려초에 일등공신에 오른 김소청이며, 그의 아들 율현가 옥천군에 봉해진것을 시작으로 14세손에 이르기까지 3명이 대광의 벼슬에 오르고 5명이 봉군되어 벌족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옥천에 세거하며 관향을 옥천으로 하게 되었으며, 후대로 내려와 9파로 갈라져서 세계를 이어왔다.
현감공파(縣監公派)
학유공파(學諭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분파되었다.
한편 시조의 6대손 판호부사 득황(得璜)의 아들 성유(成裕)는 고려 원종때 김방경과 함께 삼별초를 토평했고, 충렬왕조에서는 변경에 침입한 거란을 격퇴시켜 회원대장군의 호를 받아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고려 말엽에 주로 명성을 떨쳤던 옥천김씨는 옥천군 황희(煌禧)의 손자 문익(文益)가 충숙왕때 서해도 안렴사로 나가 치적을 남겼으며, 상장군 수겸(守謙)의 8세손 계윤(繼允)은 조선이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조선에서는 중종 때에 진사를 지낸 성련(聖鍊)과 영조 때에 부사를 지낸 영욱(永昱)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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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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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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