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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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미연화
ㆍ본관 : 재령
ㆍ작성일 : 2007년 04월 15일(일) 20:07
제 목 : 재령미씨의 유래 시급히 제발 빨리 수정해주세요
재령 미씨는 1771년(조선 영조 47년)에 성을 만들었으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시조 미영성은 시대는 알 수 없으나 백호장을 지내고 함북 종성군 행영의 도총사로 국경경비에 참여하고 그후에 경성에서 살았다고 한다. 후손인 미세손 이전의 문헌은 없어졌다고 한다
미씨는 중국 경조 (京兆:지금의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문헌에 전해지는 본관으로는 재령을 비롯한 송림(松林:경기도 장단지방) · 유성 (儒城) · 방산 (方山:강원도 양구지방)이 있다. 우리나라 미씨는 기자(箕子)가 동래할 때 복술가인 미씨를 대동한 것이 시초가 된다고 전하는 문헌이 있으며, 일설에는 1771년(영조 47)에 창씨(創氏)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고 보첩이 전하지 않아 정확히 상고할 수 없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살고 있는 미시훈(米時薰)씨의 증언에 의하면 연대미상인 미영성(米瑩盛)이 백호장(百戶長)을 지내고 함경도 종성군 행영(行營)의 도통사(都統使)를 역임한 후 종성에 정착하여 재령 미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고 하며, 그 후의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5세손 병제(秉濟)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계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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