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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빠른시일내에 빨리 부탁드려요.^^^^^^^^^^^^^^* 조선의 신분제는 법제상으로 양.천 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론 양반 중인 상민 천민 입니다.. 조선초기는 천민은 모두 천시되었죠.. 여기서 우선순위를 매긴다는것은 좀... 하지만 조선 후기부터는 노비지만 일반 상민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외거노비의 지위가 높았죠(노비중에서) 그리고 백정이 젤 천하게 여겼습니다.. 승과제도는 조선초기부터 없었습니다..천민의 생활은 거의다 백정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하인도..백정은 말그대로 말이나 소 돼지를 잡는 직업.. 옷도 천박하게 입었습니다. 요약: 승려는 고려 때는 중류(고려 때는 중인이라는 말이 없었고 조선의 중인인 중류계층임)로 고려 때도 중인 이라는 의식이 없던 것은 아니고... 조선전기는 평민이며, 조선중후기로 가면서는 점점 천민으로 추락합니다.(학자들의 시각이기도 하나 답변자가 단정으로 이해를 쉽게함그리고 천민간에는 차별이 적었으나 평민이 천민을 차별하는 것은 있었는대... 유교도덕이 적은 평민들의 차별이라 형식적으로 체계가 잡힌 것이 아니고 압박을 가하는 형태였습니다.(구체적인 차별순위등은 아래에 있으나 명확하게 순위가 있던 것이 아니라 다소 주관적이 형태였씀=즉 그런 것이 아니가 하고 서로들 차별하는 강도가 틀리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기도 함또 천민들이 돈을 벌어서 양반행세를 하는 경우도 꾀 많았답니다(심지어는 소백정이나 고리백정도 양반이 됨아래의 설명은 중간에 다른 쪽으로 빠지나 필요적이라 어쩔수가 없고 끝까지 이어서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다시 본내용으로 바뀜) 그런 것은 궁금 할만 합니다. 승려의 신분이 특이하고 이체롭게 많이 추락을 했으니까(승려같은 경우가 적음중이 원래는 욕이 아니고 필요가 있으니 그냥 중이라고 하지요.중이 왜 중이냐 이것이 절대적인 신빙성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냥 중인이니까 중인이라고외우기 쉽게 생각하세요(원래는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가능성이 전혀없는 것도 아님중인이면 그래도 평민이나 천민과는 차별적인 것이 집권계급의 하류에 속하는 정도는 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는 고급신분에 속합니다.(고려때만 중인쯤에 속함그런 중이 조선전기는 평민쯤의 지위에서 조선후기로 가면서는 천민화로 분류가 될 정도가 되었으니 이런 사례는 많치 않치요(잠시 상인설명후 아래쪽에 다시 중이야기 나옴신분이 올라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해도 신분이 떨어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망나니가 떨어진 것이나 또 그것도 심한 정도는 아님) 좀 적은것이지요왜 어느 층이나 신분을 올리려고 들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장사하는 사람 같은 경우는고려 때는 천민으로 사실 최하층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고 하는대실 각종 부당한 짓꺼리는 다한 장사치가 (상인은 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있어서 그러고 사실을 알면 천민으로 취급을 안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부도덕성이 많음) 조선에서는 평민으로 또 조선후기는 이것에도 불과하고 역관들의 활약으로 중인화의 길까지 극소가 진입하기도 했지요 그런다고 장사치가 결코 변한 것은 아니지만요. 지금의 상인과 예전의 상인은 많이 다릅니다.(특히 도덕성이 큰 차이가 남=요즘 상인은 옛날에 비하면 아주 착하는 것임본론으로 다시와서 이들 중이 평민에서 더욱 추락한 것은 명종때에 폐지된 승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한데요.자신들의 지위를 형식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사회계층에 필요적인 인물이 된 것도 아니고 관에 의해서 천시하던(중은 정부에서 차별대우하는 특이성도 있씀) 별단의 집단으로 된 것이고 거기다가 군대도 면제받던 쓸모 없고 벌레같은 집단으로 취급을 한 것이 있지요 물론 사적인 정부 지원이 산발적으로 조선시대 내내 이어진 것이 있지만 그것은 불교가 종교로서의 실질 기능이 없던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 뿐으로 어쩌면 이용의 대상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그리고 천민의 계급은 글쎄요. 노비가(천민) 평민에게 반말하고 멸시하는 판국에 하늘같이 지위가 높은 것인 평민간도 아닌 천민과 천민간에는 차별이 적었으나...(노비와 평민간에도 실질적인 구분은 없었고 서로 신분차별없이 어울려 살음=다만 법적인 차별이 극심해서 노비가 천시된 것이라 물건처럼 돈주고 넘길수도 있고, 상속이나 증여등의 대상이 된 것임평민이 차별하는 천민은 일부 있어서 백정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천민은 노비를 제외하고는 실질 차별은 평민이 했고 방조를 한 양반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씀또 천민간에는 같은 신분이라서 차별이 별반 없었으나(서로도울 최하의 처지라) 속으로는 나보다 못하다는 멸시의식이 있기는 했고 개별적으로는 우위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고요여기서 백정은 도축업자도 있지만 유기(금속그릇등)나 바구니를 반드는 집단 등등도 포함입니다.특히 고리백정이라고 해서 바구니같은 것을 만드는 백정도 정말 만만하지 않은 차별을 받았고요.하지만 이들 모두는 노비를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모든 평민이었다는 것이고, 원래는 동급이라는 것이었으나 법과는 상관이 없이 평민이 차별하고 양반이 방조를 한 것이지요(양반은 천민을 줄이는 것이 자신들에게 좋아서 노비도 공노비는 줄이려고 했고 사노비도 지나치게 많이 가지는 것을 서로 견제 해서 이런 잡다한 천민도 평민으로 할려고 했던 것임이유는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보내게 하기 위해)모 양반의 입장에서는 승려나 백정 등등의 모든 천민에게 군대와 세금을 면제해주기는 했지만 이것은 법적으로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평민들이 그들을 차별하고 천민으로 취급해서 그런 것입니다.(승려는 약간 예외)....주거 형식은 초가집에 살았죠.. 천민 중 거의 모두 가난했으니까 말이죠. 부자였다고 해도 돈을 주고 양반계급을 샀답니다계급은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조선의 국시가 숭유배불정책입니다.. 당연히 초기부터 불교는 배척됐죠가에서 승려되는걸 금지했기에 그들의 신분은 천민이었겠죠... 하지만 실질상 불교는 조선의 제일 종교었습니다.. 존경받았죠..... 왕실, 양반들도 절에 시주하고 그랬습니다.. 명종때 승과가 잠시 생기는데 이는 곧 폐지 됩니다... 성씨가 천방지축마골피 중 하나면 쌍놈이라는데 진짜인가요?그리고 김해김씨나 경주이씨, 밀양박씨는 조선시대 대표적 평민성씨라는데정말인가요?양반은柳, 閔, 宋,鄭 등이 있다는데 맞나요? 역사책에 나오는 위인들 중에 천방지추마골피의 성씨를 가졌던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들이 천민이었다는 것은 편견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리고 양반성씨도 그 다섯 성씨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미 반상의 차별이 무너진지 100년이 넘었는데 그런 것을 찾으며 살 필요는 없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