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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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글쓴이 : 한중현
ㆍ본관 : 청주한씨
ㆍ작성일 : 2005년 05월 11일(수) 11:45
제 목 : 조선시대 과거합격 명문가
과거 합격 명문가
오늘날 명문가문이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명문 대학이나 고시합격으로 가문을 빛내는 역할은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제도에 얼마나 합격하였는가가 그 가문을 빛내는 큰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과거제도 속에서 어떤성씨가 가장 많이 합격했을까?
생진과에 가장 많이 합격한 가문은 2천 7백 19명을 배출한 전주이씨이다.
이어 10위까지는 파평윤씨 9백 34명,
안동권씨 9백 9명,
남양홍씨 8백 33명,
청주한씨 7백 68명,
밀양박씨 7백 55명,
안동김씨 7백 16명,
연안이씨 6백 14명,
청송심씨 5백 67명,
평산신씨 5백 16명순이다.
11위부터 30위까지는 경주김씨, 한산이씨, 경주이씨, 진주강씨, 동래정씨, 김해김씨, 여흥민씨, 전의이씨, 광주김씨, 대구서씨, 풍양조씨, 문화유씨, 의령남씨, 광주이씨, 성주이씨, 전주최씨, 순흥안씨, 창녕성씨, 풍천임씨, 해주오씨 순이다.
이를 분석해 보면 합격자 상위 50개 가문의 합격자가
전체합격자의 56%를 차지했으며, 1명만 배출한 가문도 3백 19개나 된다.
생진과는 조선시대 과거 1차시험으로 과목에 따라 생원과와 진사과로 나눴다.
생진과에 합격하면 성균관 입학 자격을 받았다.
그러나 생진과의 경우 태종때 99명을 뽑은 것이 당쟁이 심했던
속종 때는 5천 4백 1명, 세도정치가 여파가 있던 고종 때는 7천 27명을 뽑는 등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또 조선중기 사화가 거듭되면서 일부 문중은 현직을 기피해 과거합격은
곧 선비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점도 있다.
이렇듯 어느 가문에서 문과 급제자를 몇 명 냈고 벼슬은 어느 가문이 많이 했는지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옛날에는 도덕, 문장, 충절, 벼슬 순이었으나 오늘날은 국가 위기를 구한 충절을 제일로 꼽는다. 몇가지 재미있는 기록을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주이씨, 안동권씨, 청주한씨 등이 특히 문과 급제자가 많은 가문이다.
그 숫자를 살펴보면
전주이씨 8백 73명,
안동권씨 3백 59명,
파평윤씨 3백 31명,
남양홍씨 3백 29명,
안동김씨 3백 15명,
청주한씨 2백 87명 등의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또 왕손인 전주이씨를 비롯해 광산김씨, 연안이씨는 이조때 학문과 인격을 아울러 갖춘 '벼슬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홍문관 대제학을 7명씩 가장 많이 배출했다.
대제학을 3대로 내리 이어서 배출한 가문은 광산김씨, 달성서씨, 연안이씨, 전주이씨 등 4가문이다.
광산김씨 문중은 향교 문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18현 가운데 김장생, 김집 부자를 배출했으며, 은진송씨도 송시열, 송준길을 낸 가문이다.
청백리를 많이 배출한 문중 순서는 전주이씨가 8명으로 가장 많고, 연안이씨가 7명, 남양홍씨·안동김씨·양천허씨·진주강씨·전의이씨·파평윤씨 등 6문중이다. 그리고 3대 연속으로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은 4개 가문 뿐이니 이는 연안 리씨의 월사집, 달성 서씨의 약봉집, 전주 리씨의 백강집, 광산 김씨의 사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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