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이 북적대고 허준 관련 책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허준이라는 이름이 각종 광고에 어지럽게 오르내리는 등 바야흐로 ‘허준 신드롬’이 사회 곳곳을 휩쓸고 있다.
퇴근후 술집으로 향하던 직장인들의 발걸음도 집으로 돌리는데 한몫한 TV 드라마 <허준> 때문. 그러나 정작 허준이 잠들어 있는 묘소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시제조차 모셔지지 않는 등 ‘진짜 허준’은 쓸쓸하게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산다.
경기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자유로를 시원하게 달려 임진각을 지나서 통일대교를 건너 5분여 가면 오른쪽으로 군부대 저지선이 나타난다.
여기서 비장도로를 걸어 부대 저지선으로부터 20여분을 가면 세 기의 묘가 나타난다.
바로 동양의학을 한 단계 높여놓은 공적으로 오늘날까지 존경과 흠모를 한몸에 받는 의성(醫聖) 허준, 그리고 부인 안동 김씨와 생모로 추정되는 사람의 유골이 묻힌 구암 허준 묘역이다.
지난 91년 발견된 경기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128호 허준 묘는 그러나 적적하기만 하다. 허준이라는 인물을 두고 사회 전체가 들떠 있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일반인들은 거의 찾아오지 않고 묘소 관련인들이 참배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초작업 및 시제도 모셔지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진짜 허준이 홀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묘소가 군 부대 안에 있는 점이다.
민간인 통제구역일 뿐 아니라 휴전선과 도보로 20여분밖에 떨어지지 않은 주요 군사지역이다보니 학자나 관련 참배자가 아니면 들어가기가 힘들다.
관계 군당국의 신원조회를 거쳐 군인의 입회하에서만 참관이 가능하다.
현재 파주시청은 ‘허준 신드롬’에 힘 입어 이 벽을 뚫으려 노력 중이다.
“관광 참배목적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관계 군당국과 협의를 거쳐나갈 예정이므로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시청 관계자는 말한다.
허준을 모시는 여러 단체들의 반목과 질시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한의사협회·허준기념사업회·구암학회·양천 허씨 종친회 등이 묘소 일에 관여하고 있지만 뚜렷한 주체는 없는 형편이다.
91년 발견 주체를 둘러싼 허준기념사업회와 사학자 이양재씨의 마찰, 94년 성역화사업을 둘러싼 구암학회와의 갈등 등이 어우러져 묘소가 빛을 잃고 있다는 게 관련자들의 전언이다.
이 묘소를 찾기 위해 81년부터 10년동안 주변을 뒤져왔던 사학자 이양재씨는 “관계 협회들의 협조가 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고, 파주시청 역시 “최근의 붐과 역사적인 중요도를 비춰볼 때 각계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준이 뜬다는데….” 지하에 묻힌 허준 선생 입에서 이런 푸념이 들려올 지도 모를 일이다.
탐방문의 파주시 문화체육과 (0348)945_4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