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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망우동 양원리에 동래 정씨 집성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흙을 앗아간 서울. '수도 서울엔 '고향이 산골인 촌사람, 지방도시인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섞여 산다. 이웃끼리 눈길조차 안주고 바삐 살다보니 흔히 보는 사람의 성(姓)조차 모르기도 한다.
이런 삭막한 서울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흙내음 물씬 풍기는 농촌생활을 하는 곳이 있다.
중랑구 망우동 양원리 동래(東萊) 정(鄭)씨 집성촌. 고려 말께 나지막한 야산 기슭에 형성된 이 집성촌에는 지금도 동래 鄭씨 38가구(1백44명)가 붙박이로 살고 있다. 모두 친.인척으로 타성(他姓)은 10여 가구 뿐. 1백년은 족히 넘은 기와집 5채는 지금도 鄭씨들의 보금자리이다.
아파트나 빌딩은 보이지 않는 도심속 시골마을인 셈이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鄭씨 세대는 10가구. 6백여년 전부터 논.밭을 일구며 정착한 토박이들이다.
17대째 살고 있다는 정광섭(鄭光燮.57.과수원 운영)씨는 "70년대 초까지는 벼농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과수원과 채소 농사를 주로 한다" 고 말했다.
마을 이름 양원리(養源里)의 '養' 자는 원래 '좋을 良' 자 였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마을을 지나다 신하들이 떠다 준 샘물을 마시고는 "물맛이 기가 막히다" 며 양원수(良源水)라고 이름을 붙여준데서 유래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를 養' 자로 바뀌었다는 것. 타 성씨들이 양원리에 와서 살지 않는 것은 鄭씨들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땅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린벨트도 한묶을 하긴 했다. 3대가 모여 사는 집도 네가구. 이곳 동래 鄭씨들은 해마다 10월이면 선산에 올라 시제(時祭)를 지낸다. 수백년동안 조상을 받들고 있는 제실(祭室)을 보면 마치 지방 산골에 온 착각에 빠진다.
2000년 3월 11일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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