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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시도 족보를 펴내기도 했다.
◇'내시'도 양자 삼아 자식을 두었으며 부인도 있었다. 이 때문에 족보를 펴내기도 했다.
KBS 역사스페셜 '제3의 세력 내시'
'내시(內侍)'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자신이 모시는 권력자의 힘에 의지해 '월권'을 일삼거나 표리부동한 태도로 인해 믿지 못할 위인의 대표(?)격으로 낙인 찍혀온 게 사실이다. TV 드라마나 일부 왜곡된 역사소설 등에서는 분명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내시'는 당시 조정에서 정치적 역학관계에 깊숙이 관여해 나름대로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식까지 두는 등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이번주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제3의 세력, 내시'(20일 오후 8시)를 통해 역사 속에서 늘 신분상으로 천대받아온 '내시'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내시의 마지막 후손인 유재현(72)씨.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업고 의주까지 피란갔던 공으로 연양군에 봉해진 내시 김계한의 15대 후손인 그가 이례적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유씨는 "흔히 사극에서 내관을 발길로 찬다든지 쥐어박는다든지 반말로 욕을 한다든지 하는 장면은 실제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부 역사 드라마에 의해 왜곡된 내시의 모습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내시 윤득부를 시조로 하는 족보 한 권이 남아 있다. 족보를 쓴 이윤묵이란 사람은 여기서 "내시들은 각각의 성을 가진 남자를 양자로 삼는다"며 족보 편찬 이유를 밝히고 있다.
또 서울 월계동에서 발견된 내시 무덤의 묘비에서 부부가 합장된 흔적을 찾아낸다. 이로써 내시에게도 부인과 성이 다른 자손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2000년 1월 14일
세계일보 김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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