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강여읍(康汝揖)
증보문헌기보(增補文獻備考)에 보면 시조 강여읍(康汝揖)은 조선시대에 군수(郡守)를 지냈다고 한다. 그밖에는 전해오는 문헌이 없어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강홍제(康弘濟, 1689 己巳生) : 문과(文科) 영조5년(1729) 식년시 병과(丙科)
강덕구(康德衢, 1714 甲午生) : 문과(文科) 영조14년(1738) 식년시 병과(丙科)
강완석(康完碩, 1649 己丑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강의신(康義臣, 1579 己卯生) : 무과(武科) 선조36년(1603) 식년시 병과(丙科)
강언평(康彦平, 1540 庚子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강대규(康大奎, 1690 庚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년(1726) 식년시 이등(二等)
강신(康伸, 174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년(1777) 증광시 이등(二等)
강덕삼(康德參, 169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경종1년(1721) 식년시 삼등(三等)
강덕삼(康德參, 169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경종1년(1721) 식년시 삼등(三等)
강원길(康元吉, 1585 乙酉生) : 역과(譯科) 광해군1년(1609) 증광시 ()
등 모두 1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4명, 역과 2명, 주학 4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진주(晉州)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강씨는
1985년에는 16가구 93명, 2000년에는 12,819가구 39,96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35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