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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모씨(咸平牟氏)
유래
시조 : 모경(牟慶)
시조 모경(牟慶)은 중국 관서지방 홍농 사람으로서 송나라에서 이부상서를 지내고 북송의 마지막 왕조인 흠종(欽宗) 때 대사마 대장군(大司馬大將軍)에 올랐다. 1125년(고려 인종 4)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반역을 꾀하고 왕비를 시켜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모경이 사신으로 왔다가 이 음모를 저지하고 왕권(王權)을 바로 세우는데 공을 세워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그후 귀국하여 홍농후(弘農侯)에 봉해졌으나 금(金) 나라가 송경(宋京)을 침입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납치해 가자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가 송나라가 패망하고 귀국길이 막히자 고려에 귀화하여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 고려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모경을 후대하여 평장사(平章事)의 벼슬을 내리고 모평(牟平, 함평)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함평이라 하였다. 인물
시조 모경(牟慶)의 아들 4형제 중 장남 모광정(牟光炡)이 고려 의종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했고, 모광정의 맏아들 모정린(牟挺麟)은 명종 때에 전서(典書)를 지냈다. 한편 부자 평장사(平章事)로 이름을 떨쳤던 모여장(牟汝長)은 모정린의 증손자이며, 그의 아들 모호(牟皓)가 1306년(고려 충렬왕 32) 문과에 급제하여 교관(敎官)을 지내고 삼군도총제 부원수(三軍都 摠制副元帥)가 되어 원(元)나라 침공 때 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한편 함평 모씨의 중흥 인물인 모순(牟恂)은 1417년(태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좌사간(左司諫)을 거쳐 합천 군수(陜川郡守)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재임동안 보릿고개에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고 문을 열어 놓아도 도둑이 들지 않았다고 하며,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종기로 고생하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 낫게 하였고, 늙어서 대변을 누자 맛을 보고 환후를 알았다고 한다. 특히 그의 효행에 대해 전해지는 전설적인 일화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 모세택(牟世澤)이 병으로 눕자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간호를 극진히 했으며 약을 구하러 가던중 큰 비가 쏟아져 냇물이 불어나 건널 수없자 하늘을 향해 통곡하니 비가 그쳤고, 상을 당한 후 강물이 불어 건널 수 없게 되자 하늘을 향해 외치니 강물이 흐름을 멈췄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절강(截江)이라는 아호(雅號)를 얻게 되었으며, 그이 효행이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경남 진양군 사봉면 등건 마을 입구에다 정려각(旌閭閣)을 세워 그의 효행을 사표로 삼게 했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 하고 왕위을 천탈한 후 절강일명 명어해동 종산일발 수양동청(截江一名 明於海東 種山一髮首陽同靑, 절강이라는 한 이름이 해동을 밝히고 종산의 한 머리칼은 수양과 함께 푸르리)이라는 시을 지어보내 은근히 자신을 따르도록 회유했으나, 그는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아 진주의 삼가현(三嘉縣)에 유배되었다. 이때 모순(牟恂)은 아들 3형제 중 모수천(牟秀阡)을 데리고 귀양을 가서 본관을 진주로 하는 일파를 이루었다. 그밖에 모씨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병과 대적했던 모정(牟禎), 모극심(克諶), 모수명(牟受明), 모윤성(牟允誠)이 전통을 이으며, 모정(牟禎)의 증손 모유추(有秋)는 무과에 급제하여 양덕 현감(陽德縣監)을 지냈고, 언양 현감(彦陽縣監)을 역임한 모일성(牟一成)은 숙종때 흥양 현감(興陽縣監)을 지낸 모세무(牟世茂)와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모달겸(牟達兼, 1749 己巳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식년시 병과(丙科)
모경관(牟景觀, 1709 己丑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식년시 병과(丙科) 모세무(牟世茂, 1637 丁丑生) : 문과(文科) 숙종1년(1675) 식년시 을과(乙科) 모유추(牟有秋, 1637 丁丑生) : 무과(武科) 현종3년(1662) 증광시 병과(丙科) 모응삼(牟應三, 1783 癸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4년(181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함평
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개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선사시대에는 진국,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백제 때 굴내현(屈乃縣: 또는 屈奈縣)·다지현(多只縣)에 속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굴내현은 함풍현(咸豊縣)으로, 다지현은 다기현(多岐縣)으로 개칭되어 무안군에 이속되었다. 고려 태조 때 다기현을 모평현(牟平縣)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파견되었다. 1409년(태종 9) 모평현(牟平縣)과 합하여 함평현으로 개편하였다. 기성(箕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10개 면으로 줄었으며, 1932년 식지면과 평릉면을 합병하여 나산면으로 신설, 9개 면이 되었다. 1963년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함평모씨는
1985년에는 3,656가구 15,539명, 2000년에는 5,546가구 17,93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0,543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