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문익점(文益漸)
시조는 문익점(文益漸)은 고려 공민왕 때에 문과에 올라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우문관제학(右文館提學)에 이르렀고 특히 공민왕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면화(棉花)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면화(棉花)재배의 시대를 열게 하였다. 그 공으로 부민후(富民侯)에 봉작되었다.
충선왕 때 문익점이 강성군(江城君)에 봉해졌기때문에 본관을 강성문씨라고 하는 파가 생겼다. 따라서 강성문씨는 단성문씨의 별칭이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문봉일(文奉日,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문득립(文得立,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문계수(文繼守, 1596 丙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문성량(文星良, 1666 丙午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문홍기(文弘器,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문성발(文星發, 1664 甲辰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을과(乙科)
문명부(文命敷, 1758 戊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7년(1783)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6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
단성(丹城)은 경남 산청군(山淸郡)에 있던 지명으로 본래 단계(丹溪), 강성(江城) 두 현(縣)을 합한 이름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단성문씨는
1985년에는 121가구 502명, 2000년에는 233가구 73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94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