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미영성(米榮盛)
재령 미씨는 1771년(조선 영조 47년)에 성을 만들었으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시조 미영성은 시대는 알 수 없으나 백호장(百戶長)을 지내고 함북 종성군 행영(行營)의 도총사(都統使)로 국경경비에 참여하고 그후에 경성에서 살았다고 한다. 후손인 미세손 이전의 문헌은 없어졌으므로 미병제(米秉濟)를 1세로 한다고 한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재령
재령(載寧)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식성(息城: 漢城, 乃忽, 漢忽)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중반군(重盤郡)으로 개칭하였다가, 907년(효공왕 11)에 안주(安州)로 고쳤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방어사를 폐하고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예속시켰으며, 예종(睿宗) 때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217년(고종 4) 거란병의 침공을 막은 공으로 재령(載寧)으로 고치고 현으로 승격하였다. 1397년(태조 6) 풍주(豊州) 관하의 삼지현(三支縣)을 합하였고, 1415년(태종 15) 1천호 이상의 고을을 군(郡)으로 할 때 군수관(郡守官)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재령미씨는
1985년에는 33가구 107명, 2000년에는 30가구 8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