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박간(朴侃)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세자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의 12세손 박간(朴侃, 박의경의 아들)이 고려시대에 소감(少監)을 지내고 봉산군(鳳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 조상으로 하고 밀양박씨(密陽朴氏)에서 분관하여 대를 이어왔다.
인물
박간(朴侃)의 아들 박치(朴穉)가 고려 때 진사(進士)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으며, 손자 박동생(朴東生)은 효행(孝行)으로 명망이 높았다. 한편 판도판서(版圖判書) 박지번(朴枝蕃)은 진사 박동생(朴東生)의 맏아들로 그의 아우 박지만(朴枝萬, 좌랑을 역임)과 더불어 가문의 중추적(中樞的)인 인맥(人脈)을 형성하였으며, 박지번(朴枝蕃)의 손자 박성술(朴聖述)이 조선에서 감찰(監察)을 역임하여 가통(家統)을 지켰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봉산
봉산(鳳山)은 황해도 은파군과 봉산군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휴암군(鵂嵓郡) 또는 조파의(租坡衣)·휴류성(鵂鶹城) 등으로 불리었다. 신라 때에는 서암군(栖巖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봉주(鳳州)로 개칭하여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나 현종 때 폐하고 황주(黃州)에 속하게 하였다. 충렬왕 때에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봉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봉산군으로 고쳤고, 1947년에 사리원면이 사리원시로 승격하면서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82년 10월에는 해서리가 사리원시에 포함되는 대신 은파군의 청룡리가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봉산박씨는
1985년에는 26가구 96명, 2000년에는 451가구 1,31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