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아산박씨(牙山朴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박덕손(朴德孫)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성종11년(1480) 식년시 삼등(三等)
박태회(朴泰會, 1839 己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년(1864) 증광시 삼등(三等)
박홍규(朴弘逵, 1755 乙亥生) : 역과(譯科) 정조4년(1780) 식년시
박상중(朴尙中, 1630 庚午生) : 역과(譯科) 효종5년(1654) 식년시 ()
박문주(朴文宙, 1635 乙亥生) : 역과(譯科) 효종8년(1657) 식년시 ()
박팽령(朴彭齡, 1655 乙未生) : 역과(譯科) 숙종9년(1683) 증광시 ()
박윤원(朴胤源, 1735 乙卯生) : 역과(譯科) 영조49년(1773) 증광시 ()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2명, 역과 5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
아산(牙山)은 충청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아술현(牙述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음봉현(陰峰縣: 陰岑縣)으로 개칭하였고, 탕정군(湯井郡: 溫陽)의 영현(領縣)을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인주(仁州)로 고치고,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천안에 소속되었다가, 후에 아주(牙州)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아산현으로 개칭하였고, 1459년(세조 5)에 이르러 아산현을 온양군·신창군·평택현 등에 분속하였다가, 1464년 아산현으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아산군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 아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온양·아산·신창의 3개 군을 통합하여 아산군이라고 칭하고 12개 면을 두었다. 1941년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하고,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하여 군에서 분리되었다. 1987년 배방면 공수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고, 탕정면 구령리가 배방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신동 일부가 온양시에 편입, 염치면 석정리 일부가 온양시로 편입하였다. 1990년 염치면을 염치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1월 온양시와 아산군이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의 아산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아산박씨는
1985년에는 115가구 514명, 2000년에는 265가구 86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6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