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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울산박씨(蔚山朴氏)
    유래
     시조 : 박윤웅(朴允雄)
    시조 박윤웅(朴允雄, 시호는 장무)는 신라 경명왕의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6세손이다. 그는 1099년(고려 숙종 4년) 동여진의 10만대군이 침공하자 4개월만에 이를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1106년(예종 1년) 대장군으로 익찬공신이 되어 흥려(울산)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인물
    - 박율 : 조선 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냈다.
    - 박규세(奎世), 박두세(斗世) : 박율의 아들 형제가 숙종 때 문과에 함께 급제하여 형은 군수, 아우는 목사를 거쳐 중추부지사에 이르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박식(朴植, 1829 己丑生) : 문과(文科) 고종10년(1873) 정시 을과(乙科)
     박영(朴鍈, 1838 戊戌生) : 문과(文科) 철종6년(1855) 별시 병과(丙科)
     박규세(朴奎世, 1647 丁亥生) : 문과(文科) 숙종8년(1682) 증광시 병과(丙科)
     박율(朴○, 1621 辛酉生) : 문과(文科) 효종5년(1654) 식년시 병과(丙科)
     박황(朴○, 1737 丁巳生) : 문과(文科) 정조1년(1777) 증광시 병과(丙科)
     박몽열(朴夢說, 1542 壬寅生) : 문과(文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박두세(朴斗世, 1650 庚寅生) : 문과(文科) 숙종8년(1682) 증광시 을과(乙科)
     박성집(朴聖集, 1729 己酉生) : 문과(文科) 영조47년(1771) 식년시 병과(丙科)
     박전(朴佺)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병과(丙科)
     박창봉(朴昌鳳, 1712 壬辰生) : 문과(文科) 영조12년(1736) 정시2 병과(丙科)
    등 모두 5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1명, 무과 12명, 생원진사시 3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16世
    원(元)
    17世
    경(慶)
    18世
    이(而)
    19世
    정(廷)
    20世
    봉(奉)
    21世
    태(泰)
    22世
    동(東)
    23世
    석(錫)
    24世
    한(漢)
    항(恒)
    25世
    의(義)
    지(之)
    26世
    환(煥)
    노(魯)
    (火변)
    27世
    재(載)
    기(基)
    (土변)
    28世
    현(鉉)
    진(鎭)
    (金변)
    29世
    주(注)
    원(源)
    (水변)
    30世
    업(業)
    식(植)
    (木변)
    31世
    희(熙)
    (火변)
    32世
    -
    33世
    -
    34世
    -
    3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산(蔚山)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는 진한(辰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婆娑王) 때에 지변현(知邊縣: 戒邊城·神鶴城·火城郡)을 설치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991년(성종 10)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울주군(蔚州郡)이 되어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하였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울산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하였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외남면·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관된 대신 경주의 두입지인 외남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울산군의 21개면이 14개면으로 통합되었고, 언양군은 폐지되어 언양군의 6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울산박씨는
    1985년에는 4,526가구 18,323명, 2000년에는 7,033가구 22,42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6,57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