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함경북도 종성군(鍾城郡) 행영면(行營面) 행영동(行營洞)에 개영순(介永順), 개관오(介官五), 개영준(介永俊) 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그들에 의하면 본래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살다가 9대조 때 함경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울산 거주하는 개보(介福, 1587生)가 1637년(인조 15) 무과에 합격하였는데 본관이 울산(蔚山)이며, 그의 아버지 개녹산(介祿山)은 조선시대에 북방 국경지대에 두었던 군대인 정로위(定虜衛) 출신으로 무과방목에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본관을 알 수 없는 개천년(介千年, 합격년도 미상)이라는 사람이 율과(잡과)에 합격하여 교수(敎授) 관직에 있었던 것으로 율과방목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개씨(介氏)는 중국 태평(太平)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 주(周)나라 양왕(襄王) 때 진(晋) 땅의 사람인 개자추(介子推)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여주
여주(驪州)는 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골내근현(骨乃斤縣)과 술천성(述川城)이 있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황효현(黃驍縣)으로 바뀌었고 기천군(沂川郡: 川寧縣, 述川城)의 관할에 들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황려현(黃驪縣: 黃利縣)으로 바뀌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원주에 영속되었다. 1257년(고종 44)에 영의현(永義縣)으로 개편되었고, 1305년(충렬왕 31)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388년(우왕 14)에 황려부(黃驪府)로 다시 승격하였다가 1389년(공양왕 1) 여흥군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401년(태종 1)에 음죽현(陰竹縣)의 북부를 편입하여 여흥부(驪興府)로 승격되면서 관할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변경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469년(예종 1)에 세종대왕 능인 영릉(英陵)을 왕대리(旺垈里)로 옮기면서 천령현(川寧縣)을 병합하여 여주목(驪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여주목을 폐하고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충주부 여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다. 여성(驪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관할 15개 면을 9개로 통합하였고, 1941년에 여주면이 여주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주개씨는
1985년에는 50가구 160명, 2000년에는 29가구 8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