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견권(堅權)
시조 견권(堅權)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휘하 장군으로서 왕건이 후백제 신검(神劍)과 마지막 결전을 할 때 좌익장(左翼將)을 맡아 후백제를 멸망하게 하는 전공을 세우고 고려개국 2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대상(大相) 벼슬에 올랐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하여 본관을 천녕 이라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견희복(堅希福, 1552 壬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삼등(三等)
견후민(堅後閔, 1568 戊辰生) : 의과(醫科) 선조33년(1600) 식년시
견후증(堅後曾) : 의과(醫科) 선조38년(1605) 증광시
견림(堅霖) : 의과(醫科) 명종19년(1564) 식년시 ()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의과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북 경주 일원
황해도 장연 일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여주
천녕(川寧)은 경기도 여주시(驪州市)에 속해 있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술천현(述川縣) 또는 성지매(省知買)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기천군(沂川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천녕현(川寧縣)으로 개칭하여 광주(廣州)에 속하였다. 그 후 조선 태종 때 현감을 두고 예종 때 와서 여주(驪州)로 병합하여 그 지역을 직촌(直村)이라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천녕견씨는
1985년에는 41가구 221명, 2000년에는 22가구 7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