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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견씨(全州甄氏)
    유래
     시조 : 견훤(甄萱)
    시조는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甄萱)이다. 견훤의 선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자개(阿慈介)인데, 백제 부여씨(扶餘氏)의 후손이며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扶餘隆, 615~682)의 직계 8대손이라는 설과 신라 진흥왕의 현손이라는 설이 있다.

    완산견씨세보(完山甄氏世譜)에 의하면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의 5세손이라 하였고, 그의 조부 선품(善品)이 가은현(加思縣 : 지금의 문경지방)에 숨어 살면서 이씨(李氏)로 개성하였는데, 견훤이 성을 견(甄)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견훤은 신라 진성여왕 5년에 후백제를 세웠는데 왕도를 무진주(武珍州)로 정하였다. 그리고 뒤에 왕도를 완산주(完山州 : 전주의 옛 이름)로 옮겨 국력을 키워 신라, 고려와 힘을 겨루다가 고려 태조 19년에 왕건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그 뒤 견씨 일족은 고려왕조의 미움을 사 원래 성의 음인 '진'을 '견'으로 바꾸면서 숨어 살았다. 견씨가 이렇게 쇠락함으로써 견훤 뒤의 세계는 흩어져 정확한 계통을 밝힐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를 알 수 있는 견윤(甄胤)을 1세조로 삼는다. 견씨는 조선 단종 때까지 출사 인물이 보일 뿐, 그 후대에는 이렇다 할 인불이 없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견씨는
    1985년에는 123가구 511명, 2000년에는 219가구 74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0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