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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배씨(星州裵氏)
유래
시조 : 배위준(裵位俊)
성산 배씨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오른 배위준(裵位俊)을 파조(派祖)로 하고 있다. 그의 현손(玄孫) 배인경(裵仁敬)이 충선왕(忠宣王) 때 추밀원사(樞密院事)를 지낸후 충숙왕(忠肅王) 때 흥안(興安:성산의 옛 지명) 부원군에 봉해진 연유로 성산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1764년(영조 40)에 편찬된 '갑신합보(甲申合譜)'에는 중시조 배현경(裵玄慶)의 현손인 배사혁(裵斯革:삼중대광)의 둘째 아들 배천룡(裵天龍)을 파조(派祖)로 기록하고 있는데, 계대(系代) 소목(昭穆)이 자세하지 않으므로 배위준(裵位俊)을 파조로 계대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인물
대체로 고려 말기에서부터 위세(威勢)를 떨쳤던 성산 배씨는 흥안부원군 인경(仁敬)의 아들 문적(文迪)과 무적(武迪)이 크게 현달(顯達)하여 성산 배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판추밀원사(判樞密院使)을 지낸 문적(文迪)의 손자 진손(晋孫:추밀원사 용성의 아들)은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여러 관직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역임했으며, 그의 아우 진후(晋后)는 태종 때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세종(世宗) 때 좌사간(左司諫)에 올라 청백(淸白)함으로 명망이 높았다. 조선 세종조(世宗朝)에서 지례 현령(知禮縣令)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규는 진손(晋孫)의 맏아들로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을 지냈으며 탁월한 문장으로 '관서(關西)의 공자(孔子)'로일컬어져서 쌍성 총관을 지낸 아우 구(矩)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사간(司諫) 진후(晋后)의 아들 유(裕)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가 되어 '고려사(高麗史)' 찬집에 참여했으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 사육신(死六臣)이 화(禍)를 입게 되자 '혈서상소(血書上疏)'로 충직을 호소하다가 청주(淸州)로 유배되었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무적(武迪)의 6세손 극렴(克廉:위위소윤 현보의 둘째 아들)은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晋州), 상주(尙州)의 목사(牧使)와 계림(鷄林), 화령(和寧)의 부윤(府尹)을 지내고 우왕(禑王) 때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이 되어 양백연(梁伯淵), 우인렬(禹仁烈) 등과 함께 진주(晋州)와 사근역(沙斤驛:경산부)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으며,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결전을 주장했으나 주화론자(主和論者)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밖의 인물로는 효종(孝宗)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을 지낸 시량(時亮:홍립의 아들)과 석학(碩學) 정 구(鄭 逑)의 고제(高弟)로 문명(文名)을 떨쳤던 상룡(尙龍), 상호(尙虎)가 대표적이며, 비안 현감(比安縣監) 명전(明全)의 아들 상유(尙瑜)는 <심성정이기(心性情理氣)>를 연구했고, 상보(尙輔)은 인조(仁祖) 때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거쳐 명천 현령(明川縣令)을 역임하여, 숙종 때 승지(承旨)로 필명(筆名)을 떨쳤던 정휘(正徽), 수문장(守門將) 문범(文範), 정선 현감(旌善縣監) 무화(舞和)과 함께 성산 배씨를 더욱 빛냈다. 성산복야공파은 고려 말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영찬(英贊)을 기일세(起一世)로 하고 있다. '배씨대족보(裵氏大族譜)'에 의하면 그는 달성군(達城君)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상서좌복야와 판추밀원사(判樞密院使)를 지낸 천경(天慶)의 네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관계문헌의 고증(考證)에 따라 성산파(星山派)의 지파(支派)라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배헌장(裵憲璋, 1824 甲申生) : 문과(文科) 헌종14년(1848) 별시 병과(丙科)
배한(裵瀚, 1755 乙亥生) : 문과(文科) 순조4년(1804) 식년시 병과(丙科) 배무화(裵舞和, 1648 戊子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식년시 병과(丙科) 배윤(裵閏) :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을과(乙科) 배추(裵樞) :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배한(裵閑) : 문과(文科) 태종14년(1414) 친시 을과(乙科) 배상익(裵尙益, 1581 辛巳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증광시 병과(丙科) 배수동(裵壽仝) : 문과(文科) 중종8년(1513) 식년시 병과(丙科) 배응경(裵應○, 1544 甲辰生)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식년시 을과(乙科) 배시량(裵時亮,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8년(163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4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9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23명, 의과 1명, 율과 3명) 항렬자
성주,성산배씨 대동 항렬표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하며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바뀌어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다시 경산부로 환원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1616년(광해군 9)에는 신안군으로, 1631년(인조 1)에는 신안현으로 개칭되어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성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주배씨는
1985년에는 15,477가구 64,297명, 2000년에는 27,829가구 90,23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3,620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화당공파(花堂公派)
안렴공파(按廉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재신공파(宰臣公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