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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빙씨(慶州冰氏)
유래
시조 : 빙여경(冰如鏡)
시조 빙여경(冰如鏡, 1447~1515)은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으로 자는 형조, 호는 화산, 시호는 문혜이다. 빙여경은 명나라때 예부시랑, 내각한림을 지내면서 황명을 받고 양선등과 함께 조선 세조 때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들어와 정착하여 살았다. 세조는 그를 극진히 예우하여 이조참의를 제수하고 경주부원군에 봉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 그의 부인은 정경부인 한산 이씨(1450~1516)이다. - 시조의 묘소는 경기도 개풍군 덕북면 우산남록에 있고 곡성의 통명사에서 제향한다. 인물
빙한익(1615~1674) : 자는 하섭이요 호는 쌍구암이며, 응교 빙신민의 아들이다. 그는 명나라가 망할 것을 직견하고 서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곡성에 대명산이 있다는 것을 듣고 이는 참으로 내몸을 의탁할 곳이 다하여 대명산으로 들어가 평생동안 불출하였다.
빙여옥 : 호는 덕암이다. 가정교훈을 이어받아 학문을 일찍히 성취하고 의서를 읽어 은혜가 모두에게 미쳤다. 빈궁한 사람이 병석에 누워있으면 데려다 치료해주고 가난해서 취학을 못한 아이들을 길러 가르치기도 했다. 칭송이 자자했다. 빙상택 : 조선 고종 때 곡성지방 좌수(향청의 우두머리)였다고 하며, 인품이 뛰어나 많은 유림들이 따랐다.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빙씨는
1985년에는 112가구 451명, 2000년에는 221가구 72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