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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남양서씨(南陽徐氏)
    유래
     시조 : 서간
    시조 서간은 중국에서 귀화해온 8학사의 한사람으로 당성에 정착하여 살면서 벼슬이 태사에 이르러 남양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 서후(徐厚)가 고려 현종때 대장군으로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당성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서간을 시조로 받들고 남양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인물
    4세손 서눌(徐訥)이 문하시랑평장사를, 그의 아들 서존(徐存)은 병부상서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으며, 정당문학을 지낸 서찬(徐贊)의 아들 서희팔(徐希八)과 판도판서에 오른 서적(徐迪)의 부자가 유명했다. 한편 우승지 서숙(徐淑)의 맏아들 서충수(徐忠守)는 도승지을 역임했으며, 부위 서혼(徐混)의 아들 서충필(徐忠弼)이 부호군에 올라 호조참판을 지낸 아우 서충우(徐忠佑)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서정연(徐挺○, 1588 戊子生) : 문과(文科) 인조3년(1625) 별시 병과(丙科)
     서성경(徐性慶, 1690 庚午生) : 문과(文科) 영조11년(1735) 식년시 병과(丙科)
     서신남(徐信男,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서덕신(徐德信, 1602 壬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서한주(徐漢柱, 162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4년(1646) 식년시 이등(二等)
     서정연(徐挺然, 158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광해군7년(1615) 식년시 삼등(三等)
     서몽량(徐夢良, 1659 己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22년(1696) 식년시 삼등(三等)
     서후경(徐後慶, 1676 丙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25년(1699) 식년시 삼등(三等)
     서후경(徐後慶, 1676 丙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25년(1699) 식년시 삼등(三等)
     서개립(徐介立, 153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6년(1573)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수원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시(水原市)와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 당항성(唐項城)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치고, 쌍부(雙阜)·정송(貞松)·안양(安陽) 등을 관할하였다.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 水原)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 水原)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 仁川)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고 재양현(載陽縣: 安陽縣)을 관할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익주(益州)로, 후에 강령도호부(江寧都護府)로, 다시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으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가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수원진을 남양으로 옮겨 설치하였고 별호는 영제(寧堤)·과포(戈浦)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남양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가 1906년 월경지 정리에 따라 수원의 두입지(斗入地)인 팔탄·분향·장안·초장·압정·오정 등 6개면이 남양군에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양군이 폐지되어 수원군에 병합되었다. 이때 일부 면이 은덕·쌍수·마도·송산·서신·비봉면으로 통합되고 수원군에서 편입했던 6개면은 팔탄면·장안면·우정면으로 통합되어 다시 수원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수원면이 수원읍으로 승격되고,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수원군을 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 주변의 20개 리를 편입하였으며, 1967년 6월 서울시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시로 이전되었다. 1983년 전국행정구역 조정으로 용인시 수지면(水枝面) 하리(下里)·이의리(二儀里)의 2개 리가 편입되었다. 1987년 화성군 매송면(梅松面) 금곡리(金谷里)·호매실리(好梅實里)가 편입되었다. 1988년 7월 장안구·권선구 2개 구가 신설되었고, 1993년 팔달구가 신설되었다. 1994년 권선구에 입북동·당수동을, 팔달구에 영통동이 각각 신설되었다. 1995년 권선구 곡선동이 권선동과 곡선동으로 나뉘고, 화성군 태안읍 신리와 망포리 일원이 팔달구 매탄3동에 편입되었다. 2003년 11월 영통구가 신설되었다. 2004년 현재 4구 4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양서씨는
    1985년에는 2,944가구 13,650명, 2000년에는 723가구 2,24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2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