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석성(石星)
시조 석성(石星)은 중국 동명 사람으로 1559년 진사 이과에 급제하고 명나라 명종을 직간하여 파직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어 병부상서에 이르렀다. 그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돕는데 공을 세웠으나 심유경으로 인하여 투옥당했다. 그후에 복관되어 그의 아들 석단ㅇ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해주에 정착하여 살자 왕이 그를 수양군에 봉하고 땅을 하사했으며 본적을 해주로 하게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였다.
항렬자
12世
상(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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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종(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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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世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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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봉(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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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상(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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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
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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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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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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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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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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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3世孫은 12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석씨는
1985년에는 580가구 2,664명, 2000년에는 270가구 94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4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