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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경주설씨(慶州薛氏)
    유래
     시조 : 설지덕(薛支德)
    설씨의 기원은 신라가 생기기 이전(BC 57년)의 박혁거세 탄생설화에 나오는 6촌장의 한사람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호진(虎珍)이 5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고 그후 32년(유리왕 9년)에 6촌이 6부로 개칭을 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쳐지고 성을 설씨로 하사했다. 습비부가 경주에 속하므로 본관을 경주로 하고, 시조를 설지덕(薛支德)으로 하였다. 36대손인 설자승이 고려 인종때 예부시랑으로 순화(순창)백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바꾸었으나 설귀창을 파조로 하는 개성파는 원래의 경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설성인(薛成仁, 1594 甲午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원중(薛元仲,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처인(薛處仁,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충립(薛忠立,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호인(薛好仁, 1595 乙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후인(薛厚仁,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보(薛福, 1594 甲午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경례(薛京禮,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설한주(薛翰周, 1806 丙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년(1835) 증광시 이등(二等)
     설범유(薛範儒, 173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년(1777) 증광시 이등(二等)
    등 모두 1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8명, 생원진사시 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41世
    기(基)
    42世
    진(鎭)
    43世
    원(源)
    44世
    표(杓)
    45世
    열(烈)
    46世
    재(在)
    47世
    현(鉉)
    48世
    택(澤)
    49世
    식(植)
    50世
    환(煥)
    51世
    규(圭)
    52世
    -
    53世
    -
    54世
    -
    55世
    -
    56世
    -
    57世
    -
    58世
    -
    59世
    -
    60世
    -

     설지덕 계
    68世
    진(鎭)○
    69世
    ○수(洙)
    용(溶)○
    70世
    동(東)○
    병(柄)○
    71世
    ○환(煥)
    ○섭(燮)
    72世
    ○은(垠)
    재(在)○
    73世
    ○현(鉉)
    ○석(錫)
    ○철(鐵)
    ○구(九)
    74世
    ○홍(泓)
    태(泰)○
    75世
    ○빈(彬)
    ○환(桓)
    76世
    ○찬(燦)
    영(榮)○
    77世
    ○균(均)
    ○곤(坤)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69世孫은 68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65년(신라 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다.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다. 935년(고려 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고 식읍을 주었고, 그를 사심관으로 삼았다. 비로소 처음으로 경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유수(留守)를 두어 영동도(嶺東道)에 속하게 하였다. 1008년(목종 11) 때 낙랑군(樂浪郡)이라 별칭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의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 때 계림부(鷄林府)로 개편하였다. 1202년(신종 5) 경주 야별초의 반란으로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219년(고종 6) 동경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로 개칭한 이후 1415년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다가 1417년 울산으로 이전하였다. 1637년(인조 15)에 속현인 자인현이 분리 독립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면 폐합으로 경주군이 되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경주군과 통합하여 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설씨는
    1985년에는 1,792가구 7,691명, 2000년에는 1,879가구 6,06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40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