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승개(承愷)
시조 승개(承愷)는 연일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로 선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고려 정종때 대장군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으로 하였다.
광산승씨도 승개의 후손이며 광산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광산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승응조(承膺祚, 1744 甲子生) : 문과(文科) 정조6년(1782) 평안도문과 병과(丙科)
승이상(承履祥, 1851 辛亥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병과(丙科)
승경항(承慶恒, 1744 甲子生) : 문과(文科) 정조10년(1786) 식년시 병과(丙科)
승진태(承鎭泰, 1804 甲子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병과(丙科)
승정술(承正述, 1737 丁巳生) : 문과(文科) 영조38년(1762) 식년시 병과(丙科)
승헌조(承憲祖, 1741 辛酉生) : 문과(文科) 정조22년(1798) 식년시 병과(丙科)
승천일(承天一, 1700 庚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9년(1733) 식년시 이등(二等)
승정효(承正孝, 1724 甲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8년(1762) 식년시 삼등(三等)
승사묵(承師默, 1756 丙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6년(1792)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명, 생원진사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영일읍
연일(延日)은 경상북도 동해안에 위치한 포항시 영일읍(迎日邑)의 옛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근오지현(斤烏支縣) 또는 오량지현(烏良支縣)이라 불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임정현(臨汀縣)으로 개칭하고, 의창군(義昌郡: 興海)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일현(迎日縣: 延日)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에 경주부(慶州府)에 내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조선 초에는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兵馬使)가 지현사(知縣事)를 겸하게 하였다. 세종대에 다시 병마첨절제사로 고쳤다가 후에 현감만을 파견하였다. 1732년(영조 8)에 통양포(通洋浦) 아래에 포항창(浦項倉)을 설치해 함경도 진휼(賑恤)의 바탕으로 삼게 함으로써 함경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동해안 해로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영일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 연일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일군은 연일면 등 5개면으로 분면되어 흥해·장기·청하군과 함께 영일군으로 통폐합되었고, 1980년 연일면이 연일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영일군이 포항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일승씨는
1985년에는 378가구 1,506명, 2000년에는 568가구 1,82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4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