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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흥안씨(順興安氏)
유래
시조 : 안자미(安子美)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에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 上護軍)에 추봉되었다. 시조 이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흥년(순흥)현에 살았으므로 본관을 순흥으로 하였다. 안자미의 아들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를 기준으로 1, 2, 3파로 구분된다. 시조 안자미의 묘는 경북 영주군 순흥면에 있었으나 없어지고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 인물
시조 안자미의 아들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 3형제 대(代)에서 가세가 일기 시작하여 훌륭한 인맥을 형성하였다.
안씨의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의 태두인 안향(安珦)은 1파인 안영유의 손자이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역임했는데 중국에서 쓰는 서적을 도입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의 진흥에 힘썼다. 그의 아들이 찬성(贊成) 안우기(安于器), 손자가 정당문학(政堂文學) 안목(安牧)이며, 증손대에서 안원숭(安元崇), 안원형(安元衡). 안원린(安元璘)의 3형제가 있는데 맏이 안원숭은 순흥안씨로 이어지고, 둘째 안원형은 신죽산안씨으로 갈렸으며, 셋째 안원린은 탐진안씨로 분적했다고 한다. 안향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조선의 주요인물로는 안침(安琛), 안당과 안위(安瑋), 안현(安玹), 안상의 3형제가 있다. 안침은 세조 때 문과에 급제, 전라도관찰사·한성부윤·대사헌·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공조판서를 거쳐 지돈령부사에 이르렀는데, 그의 5형제는 모두가 현달하였다. 안당은 성종 때 친시문과에 급제, 중종 때 형조·공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이 되었는데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아들 안처겸(安處謙)이 처형당할 때 사사(賜死)되었다. 안위는 중종 때 문과에 급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수하고 호조판서·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군략가로 이름났다. 안현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 명종 때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을 역임했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안상은 음악의 대가로서 선조 때 거문고·비파·장고의 악보를 망라하여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발간하였다. 3파에서는 고려 말의 명신 안축(安軸), 안보(安輔), 안즙(安輯)의 3형제가 유명하다. 안축은 충숙왕 때 원(元)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고, 충목왕 때 첨의찬성사·춘추관감사(春秋館監事)가 되어 충렬·충선·충숙왕조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안보는 공민왕 때 정당문학, 안즙은 대제학을 지냈는데, 3형제 중 안축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그의 아들 안종원(安宗源)은 조선 개국 후 삼사영사(三司領事)에 오르고, 종원의 아들 안경공(安景恭)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집현전 대제학이 되었다. 안경공의 아들 안순(安純)과 손자 안숭선(安崇善), 안숭효(安崇孝)도 모두 명신으로 유명하며, 안숭선의 현손으로 안자유(安自裕), 안명세(安名世) 등이 뛰어난 인물들이다. 근세인물로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의사 안중근(安重根), 선천(宣川)에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안명근(安明根,안중근의 종제),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인 안창호(安昌浩),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安益泰) 등이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안극효(安克孝, 1699 己卯生) : 문과(文科) 영조17년(1741)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복준(安復駿, 1698 戊寅生) : 문과(文科) 영조4년(1728)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정간(安廷侃, 1846 丙午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3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재린(安在麟, 1820 庚辰生) : 문과(文科) 철종2년(1851)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숭선(安崇善, 1392 壬申生) : 문과(文科) 세종2년(1420)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안자유(安自裕, 1516 丙子生) : 문과(文科) 명종11년(1556) 별시 병과(丙科) 안만철(安萬哲) : 문과(文科) 성종21년(1490) 별시 병과(丙科) 안희(安熹, 1551 辛亥生) : 문과(文科) 선조18년(1585) 별시 병과(丙科) 안수량(安秀良) : 문과(文科) 중종21년(1526) 중시 을과(乙科) 안공신(安公信) : 문과(文科) 중종32년(1537)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64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21명, 무과 91명, 생원진사시 327명, 역과 42명, 의과 24명, 음양과 26명, 율과 9명, 주학 1명) 항렬자
1파
2파
3파 : 문숙공파
3파 : 소이공파
3파 : 제주공파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
순흥(順興)은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에 속해 있는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흥주(興州)라 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안동부(安東府)에 속하였다가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그 후 충렬왕이 태(胎)를 봉안하여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되었으며, 충목왕이 태를 봉안하여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바뀌었다가, 1457년(세조 3)에 부사 이보흠(李甫欽)이 역모를 꾀하였다고 하여 풍기(豊基), 영천(榮川)에 나누어 편입시켰다. 1683년(숙종 9)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순흥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로 이관하였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군을 없애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에 각각 편입시켜 영주시에 속한 순흥면으로 남아 있다. 1980년 영주시가 생기면서 영풍군의 관할이 되었다가,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흥안씨는
1985년에는 99,937가구 417,598명, 2000년에는 145,254가구 468,82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20,384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