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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양씨(濟州梁氏)
유래
시조 : 양을나(梁乙那)
제주양씨는 탐라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세 신인(神人) 중의 한 명인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한다. 탐라(제주의 옛 이름)에는 삼성혈 전설이 있는데,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 맏을 양을나(良乙那), 둘째를 고을나(高乙那), 세째를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그들은 수렵을 하여 살았는데, 하루는 바다에 이상한 상자가 떠내려와 건져 보니 세 미녀와 오곡의 종자, 망아지, 송아지가 들어 있었다. 세 신인은 세 미녀와 각각 결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니 그로부터 탐라는 개척되었다.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년) 신라에 사신으로 예방(禮訪)하니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下賜)하였다고 한다. 양탕(良宕)의 후손 양순(梁洵)이 682년(신라 신무왕 2년) 신라에 입국하여 국학에 입학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그러나 대신들이 외국인 고관을 꺼려 승진을 못하게 되자 왕이 한라군(漢拏君)에 봉하게 되어 중시조가 되고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양응정(梁應鼎) : 문과(文科) 명종11년(155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상기(梁相器, 1827 丁亥生) : 문과(文科) 고종2년(1865)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양석관(梁奭觀, 1746 丙寅生) : 문과(文科) 순조4년(1804) 식년시 병과(丙科) 양진손(梁震孫) : 문과(文科) 세조10년(1464) 춘당대시 정과(丁科) 양응태(梁應台)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병과(丙科) 양정명(梁井明)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증광시 정과(丁科) 양덕호(梁德浩, 1791 辛亥生) : 문과(文科) 순조31년(1831) 식년시 병과(丙科) 양덕하(梁德厦, 1714 甲午生) : 문과(文科) 영조15년(1739) 정시 병과(丙科) 양계벽(梁季璧) : 문과(文科) 연산군4년(1498) 식년시 병과(丙科) 양봉래(梁鳳來)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등 모두 4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4명, 무과 8명, 생원진사시 26명)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제주도
제주(濟州)는 한반도(韓半島)의 남서 해상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섬이다. 명칭도 도이(島夷)·주호(州胡)·탐모라(耽牟羅)·섭라(涉羅)·탁라(乇羅)·탐라(耽羅)·제주(濟州)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신라의 속국이었던 탐라국(耽羅國)은 938년(태조 21) 고려의 속국이 되었고, 1105년(숙종 10)부터는 군을 설치하여 직접 다스리다가, 1153년(의종 7) 군을 현으로 고쳤으며, 1211년(희종 7)에 탐라군을 제주로 개편하였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었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조선 태종 때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칭호가 폐지되고 실질적인 행정력 속에 포함되었다. 1416년(태종 16) 한라산을 경계로 산북(山北)을 제주목(濟州牧), 산남(山南)을 양분하여 동쪽에 정의현(旌義縣), 서쪽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고 전라도(全羅道)에 소속시켜 통치하였다. 1864년(고종 1) 대정·정의 양현을 군으로 승격시켜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관할 하에 두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대정군을 관할하도록 했다. 1896년에 다시 13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정의군·대정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정의군·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楸子面)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5년 도사제(島司制)로 개편되어 제주도(濟州島)가 되었고, 1946년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관할 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했다. 1955년에 제주읍을 시로 승격하였고, 1956년에는 서귀면·대정면·한림면을 각각 읍으로 승격하고 한경면을 신설하였다. 1980년에 애월면·구좌면·남원면·성산면을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1년에 서귀읍과 중문면을 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하였다. 1985년에 조천면을 읍으로, 1986년에 구좌읍 연평출장소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제주양씨는
1985년에는 26,702가구 113,442명, 2000년에는 41,169가구 133,35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42,211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