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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楊氏)
유래
시조 : 양경문(楊敬文)
시조 양경문(楊敬文)은 고려 때의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로 그 이외의 사적과 선대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몇대에 걸쳐서 남원에 살아온 선비 집안이므로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인물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현종 때 예부상서·좌복야·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진, 공민왕 때 개성윤(開城尹)으로서 흥왕사(興王寺)의 변에 공을 세워 1등공신에 오르고 우왕 때 찬성사상의(贊成事商議)로 있다가 창녕(昌寧)에 유배된 백익(伯益)을 들 수 있다.
또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인물로는 여공(汝恭)이 있다. 그는 세종 때 병조좌랑을 지냈고 효성이 지극하고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양시정(楊時鼎, 1567 丁卯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식년시 병과(丙科)
양시진(楊時晉, 1573 癸酉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병과(丙科) 양시우(楊時遇, 1563 癸亥生) : 문과(文科) 광해군6년(1614) 별시 병과(丙科) 양자유(楊子由) : 문과(文科) 세조14년(1468) 춘당대시 병과(丙科) 양몽인(楊夢寅, 1695 乙亥生) : 문과(文科) 영조16년(1740) 증광시 병과(丙科) 양홍(楊洪)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양공준(楊公俊) : 문과(文科) 중종15년(1520) 별시 병과(丙科) 양사형(楊士衡, 1547 丁未生) : 문과(文科) 선조21년(1588) 식년시 병과(丙科) 양돈(楊墩)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년(1507) 식년시 삼등(三等) 양선태(楊善泰, 1724 甲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2년(1756)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2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생원진사시 19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양씨는
1985년에는 9,711가구 41,025명, 2000년에는 16,719가구 52,19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332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