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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엄씨(寧越嚴氏)
유래
시조 : 엄임의(嚴林義)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원래 중국의 당나라 사람으로 신시랑(영산신씨)과 함께 사신으로 신라 35대 경덕왕때 우리나라에 파락사(波樂使)라는 사신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머물러 살면서 엄씨와는 서로 종씨라 부르며 혼인도 하지 않고 의좋게 살았었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당나라 현종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락사(波樂使)로, 신라에 왔다가 본국에서 정변이 일어나자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영월 땅인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한 것이 우리나라 엄씨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조에 와서 그를 내성군(奈城君)에 추봉하고 후손들에게 영월(寧越)을 식읍으로 하사하자, 후손들이 그 곳에 살면서 영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엄임의가 고려 때에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지내고 첫째 아들 엄태인이 군기감을 지내고 영월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 엄임의의 묘소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동산에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엄경운(嚴慶運, 1659 己亥生) : 문과(文科) 숙종23년(1697)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엄석관(嚴錫瓘, 1829 己丑生) : 문과(文科) 고종3년(1866) 별시 을과(乙科) 엄복연(嚴復淵, 1849 己酉生) : 문과(文科) 고종27년(1890) 별시 병과(丙科) 엄사만(嚴思晩, 1729 己酉生) : 문과(文科) 영조50년(1774) 증광시 병과(丙科) 엄인(嚴璘, 1716 丙申生) : 문과(文科) 영조33년(1757) 정시 병과(丙科) 엄주영(嚴胄永, 1843 癸卯生) : 문과(文科) 고종14년(1877) 별시 병과(丙科) 엄주한(嚴柱漢, 1852 壬子生) : 문과(文科) 고종11년(1874) 증광시 병과(丙科) 엄세영(嚴世永, 1831 辛卯生) : 문과(文科) 고종1년(1864) 증광시 병과(丙科) 엄경하(嚴慶遐, 1678 戊午生) : 문과(文科) 영조3년(1727) 증광시 병과(丙科) 엄사헌(嚴思憲, 1741 辛酉生) : 문과(文科) 영조47년(1771) 정시2 병과(丙科) 등 모두 14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8명, 무과 39명, 생원진사시 78명, 역과 1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영월
영월(寧越)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영월군 일대의 지명으로 고구려 때는 내생군(奈生郡)이라 불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내성군(奈城郡)으로 바꾸고, 자춘현(子春縣: 永春)·백오현(白烏縣: 平昌)·주천현(酒泉縣) 등을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월로 개칭했고, 1018년(현종 9)에 원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영월군으로 승격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이 고장 청령포(淸怜浦)에 단종(端宗)이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한 곳이라 해서 노산군(魯山君)을 단종으로, 능을 장릉(莊陵)으로 추존함에 따라 영월군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영월군이 되었고, 1986년에는 강원도 영월군이 되었다. 1937년에 군내면이 영월면으로 개칭되었고, 1960년에는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월엄씨는
1985년에는 27,225가구 114,228명, 2000년에는 38,887가구 124,69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39,681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