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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나주오씨(羅州吳氏, 금성)
    유래
     시조 : 오숙규(吳淑珪)
    나주오씨는 고려시대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오언(吳偃)을 일세조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언의 선대는 신라 지증왕 1년에 우리나라에 온 중국 사람인 오첨(吳詹)이라 한다. 그 이후 오숙규(吳淑珪)가 분적하여 나주오씨의 세계를 이루었다.
    그러나 오숙규 이후 4대의 세계가 분명치 않아 오언을 기세조로 하고 있다. 그 후 5세손 오자치(吳自治)가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을 세운 후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져 그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오운기(吳雲驥) : 문과(文科) 명종13년(155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오겸(吳謙, 1496 丙辰生) : 문과(文科) 중종27년(1532) 별시2 을과(乙科)
     오희도(吳希道, 1584 甲申生) : 문과(文科) 인조1년(1623) 알성시 병과(丙科)
     오현주(吳鉉胄, 1715 乙未生) : 문과(文科) 영조42년(1766) 정시 병과(丙科)
     오상욱(吳相昱, 1798 戊午生) : 문과(文科) 순조34년(1834) 식년시 병과(丙科)
     오이익(吳以翼, 1618 戊午生) : 문과(文科) 효종3년(1652) 증광시 병과(丙科)
     오석하(吳碩夏) : 문과(文科) 숙종7년(1681) 식년시 병과(丙科)
     오학선(吳鶴善, 1853 癸丑生) : 문과(文科) 고종30년(1893) 알성시 병과(丙科)
     오광수(吳光洙, 1844 甲辰生) : 문과(文科) 고종11년(1874) 증광시 병과(丙科)
     오한원(吳翰源, 1750 庚午生) : 문과(文科) 영조51년(1775)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5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2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3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전라남도 나주
    항렬자
    13世
    시(時)
    14世
    원(源)
    15世
    상(相)
    16世
    환(煥)
    17世
    재(在)
    규(圭)
    18世
    선(善)
    19世
    수(洙)
    20世
    근(根)
    21世
    열(烈)
    22世
    교(敎)
    균(均)
    23世
    종(鍾)
    24世
    영(泳)
    25世
    병(秉)
    26世
    희(熙)
    27世
    균(均)
    28世
    호(鎬)
    29世
    순(淳)
    30世
    -
    31世
    -
    3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4世孫은 13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오씨는
    1985년에는 6,003가구 26,245명, 2000년에는 7,916가구 25,54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8,152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계파
    남평공(금양군), 파성공(금양군),
    난봉공, 내금위공, 도암공, 명곡공,
    백은공(부사공), 송은공(부사공), 죽은공(부사공),
    사정공, 상호군공, 석문공, 송계공, 송은당공, 장탄,
    정언공, 지봉공, 참의공, 참판공, 칠송공

     참고
    현재 같은 뿌리이면서도 본관을 금성오씨라 부르는 후손들이 있는데, 이것은 금성이 나주의 옛이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