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옹몽진(邕夢辰)
고려시대에 병부상서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를 비조로 하여 옹경성(邕慶星), 옹의성(邕義星), 옹명정(邕命廷) 등 여러 상계 조상들이 조선의 개국 때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둔하거나 성을 감추고 있다가 초산(지금의 정읍)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옥천의 향리로 강속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모든 가승과 종적이 실전되었다고 한다.
시조 옹몽진(邕夢辰)은 옹태운의 아들로 1553년(명종 8년) 친경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음성현감을 역임하고 충청도사, 형조좌랑, 예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에 이르러 집안을 다시 세우면서 옹몽진의 증조부이신 옹은(邕誾)을 1세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옹몽진(邕夢辰) : 문과(文科) 명종11년(1556) 중시 병과(丙科)
옹몽진(邕夢辰) : 문과(文科) 명종8년(1553) 별시 병과(丙科)
옹희익(邕熙益, 1631 辛未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옹경우(邕景祐, 1566 丙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이등(二等)
옹수흠(邕守欽, 1531 辛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이등(二等)
옹은필(邕殷弼)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5년(154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족보발간
- 기사보(1629년, 인조 7년)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
순창(淳昌)은 전라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쳐 적성현(赤城縣)·구고현(九皐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하게 되었다.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淳昌: 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년(현종 9) 남원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국사(國師)인 정오선사(丁午禪師)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 초에서도 계속 순창군(淳昌郡)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에서 독립하였고, 1896년 도제 실시로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임실군과 남원군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35년 구암면(龜巖面)과 무림면(茂林面)을 통합하여 구림면으로 개편, 11개 면이 되었다. 1979년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창옹씨는
1985년에는 56가구 271명, 2000년에는 105가구 35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0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