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왕이문(王以文)
시조 왕이문(王以文)의 원래 이름은 왕봉강으로 중국 제남에 살던 왕족이었다. 명나라 의종 때 청나라가 중국의 판도를 석권하자 협서 안찰사로 있던 왕접이 이에 대항하여 싸우다 영하대전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청나라 세조가 왕씨를 멸족하려고 1645년(조선 인조 23년) 왕봉강을 심양 포로 수용소로 압송하였다. 그때 심양(지금의 봉천)에 볼모로 잡혀있던 봉림대군(조선 17대 왕인 효종)이 그를 만나보고 뜻이 맞아 같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문이란 이름을 하사 하고 궁중에서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왕이문을 시조로 하고 고향인 제남을 본관으로 하였다.
- 묘소는 양주군 진건면에 있으며 음력 10월 초에 한다.
항렬자
6世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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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世
설(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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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世
제(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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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世
식(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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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世
희(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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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世
균(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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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世
석(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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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수(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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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世
병(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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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연(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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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재(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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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
현(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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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원(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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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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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현(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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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기(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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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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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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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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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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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7世孫은 6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의 성도(省都)로 황하의 삼각주(三角洲)와 동산(東山)과의 경계선 가까이에 위치한 지명으로 1904년 개부(開埠)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제남왕씨는
1985년에는 196가구 800명, 2000년에는 244가구 79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9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