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곽봉(郭鳳)
시조 곽봉(郭鳳)은 현풍곽씨의 후손으로 조선 중종 6년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지냈다. 봉산에 이주해 왔기 때문에 봉산(鳳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 봉산곽씨는 1976년에 현풍곽씨로 합본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곽희조(郭熙祖)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식년시 병과(丙科)
곽봉(郭鳳) : 문과(文科) 중종6년(1511) 별시 병과(丙科)
곽봉(郭鳳)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연산군7년(1501)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봉산
봉산(鳳山)은 황해도 은파군과 봉산군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휴암군(鵂嵓郡) 또는 조파의(租坡衣)·휴류성(鵂鶹城) 등으로 불리었다. 신라 때에는 서암군(栖巖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봉주(鳳州)로 개칭하여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으나 현종 때 폐하고 황주(黃州)에 속하게 하였다. 충렬왕 때에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가 후에 다시 봉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봉산군으로 고쳤고, 1947년에 사리원면이 사리원시로 승격하면서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82년 10월에는 해서리가 사리원시에 포함되는 대신 은파군의 청룡리가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봉산곽씨는
1985년에는 3가구 18명, 2000년에는 78가구 24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