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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위씨(江華韋氏)
유래
시조 : 위수여(葦壽餘)
시조 위수여(?~1012, 시호는 안공)는 중국 팽씨의 후예이다. 위수여는 960년(고려 광종 11년) 중원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사선관이 되었고 고려 목종 때에는 문하시랑 평장사, 1011년(현종 2년)에는 궤장을 하사 받았다. 1012년(현종 3년)에 강화현 개국백에 봉해지고 강화를 식읍으로 하사 받았으며 죽은 후에 내사령에 추증되었다. 그래서 본관을 강화로 했다. 그러나 그후의 기록이 없어져서 위조를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 묘소는 강화군 강화읍에 있으며 10월 9일 향사한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위수징(韋壽徵, 1653 癸巳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식년시 을과(乙科)
위응기(韋應麒, 1755 乙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0년(1774) 식년시 삼등(三等) 위원봉(韋元鳳, 185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일등(一等) 위원희(韋元羲, 1844 甲辰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년(1865) 식년시 삼등(三等) 위원기(韋元夔, 1848 戊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7년(1870) 식년시 이등(二等) * 모두 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4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
강화(江華)는 옛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이며 고구려 때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는 해구군(海口郡)으로 개칭하고 한주(漢州: 廣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 현재의 지명인 강화현으로 개편되었고, 1232년(고종 11) 몽골의 침입으로 고종이 천도하여 약 40년간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였으며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부윤(府尹)으로 승격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도 인조가 몽진(蒙塵)을 하려고 하였다. 1906년(광무 10)에 강화군이 되었다. 1995년 경기도에 속하였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丙寅洋擾, 1886)·신미양요(辛未洋擾, 1871)·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 1875) 등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화위씨는
1985년에는 351가구 1,443명, 2000년에는 597가구 1,80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51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