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유자택(柳資澤)
시조는 유자택(柳資澤)은 조선 정조2년 문과에 올라 여러 지방백(地方伯)을 거친 뒤 전라감사(全羅監司)를 마지막으로 남원(南原)에 정착하여 살았다.
신해보(辛亥譜) 서문에 의하면 영광유씨는 진주유씨(晋州柳氏)에서 분파되었는데, 그는 진주군(晋州君) 유유(柳洧)의 큰 아들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익양공(翊襄公) 유혜방(柳惠芳)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유자광(柳子光, 1439 己未生) : 문과(文科) 세조14년(146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유자황(柳子晃) : 문과(文科) 문종1년(1451) 증광시 정과(丁科)
유방(柳房) : 문과(文科) 연산군7년(1501) 식년시 병과(丙科)
유화춘(柳華春, 1557 丁巳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유몽기(柳夢起, 1609 己酉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유천(柳阡, 1561 辛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이등(二等)
유자황(柳子晃)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세종29년(1447) 식년시 삼등(三等)
유동규(柳東奎, 1826 丙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2년(1846) 식년시 삼등(三等)
유창서(柳昌緖, 1655 乙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31년(1705)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3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4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영광
영광(靈光)은 전라남도 북서부 해안에 인접한 영광군 일대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는 무호이군(武戶伊郡)이라 불렀다. 660년(신라 무열왕 7)에 모지(牟支)로 개칭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무령군(武靈郡)으로 바꾸고, 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고창현(高敞縣) 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광군(靈光郡)으로 바꾸었고, 속현으로 함풍현(咸豊縣: 咸平)·모평현(牟平縣: 咸平)·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해제현(海際縣: 무안군 해제면 일대)·삼계현(森溪縣: 장성군 삼계면·삼서면 일대)·임치현(臨淄縣: 영광군 염산면·백수읍 일대)·육창현(六昌縣: 영광군 군남면 일대)을 거느린 대읍이었다. 정주(靜州) 또는 오성군(筽城郡)으로도 불리었다. 조선시대에도 영광군을 유지했으나, 1629~38,1755~64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영광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전라남도 영광군이 되었고, 1955년에는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광유씨는
1985년에는 228가구 964명, 2000년에는 428가구 1,47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057명으로 조사되었다.
참고사항
종파(宗派), 진주파(晋州派), 산동파(山洞派), 매안파(梅岸派), 황죽파(黃竹派), 운봉파(雲峰派), 곡성파(谷城派)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