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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윤씨(南原尹氏)
    유래
     시조 : 윤위(尹威)
    시조 윤위(尹威, 시호는 문헌)는 윤신달의 8세손이며, 윤관 장군의 증손자이다. 윤위는 1176년(고려 명종 6년)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박사를 거쳐 기거랑, 이부랑중, 예빈소경 등을 지내고 1200년(고려 신종 3년) 국자사업으로 호남에 갔을 때 남원에서 복기남이 반란을 일으키자 혼자서 적을 토평하여 평정 시켰다. 그 공으로 남원백에 봉해지고 남원을 식읍으로 하사 하자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 윤씨에서 분관하여 남원으로 하였으나 파평 윤씨로 다시 합본 하였다고 한다.

    - 윤위의 묘소는 남원 문덕산에 있으며 음력 3월 18~20일에 향사 한다.
    인물
    - 윤형(衡) : 형조, 이조판서를 지냈다.
    - 윤섬(暹) : 선조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들어가 태조의 조상이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아, 그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사복시정을 지냈다.
    - 윤집(集) : 윤섬의 손자. 척화론자로서 청나라에 잡혀가서 장렬한 죽음을 하여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3학사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 윤행임(行恁) :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을 지냈다.
    - 윤정현(定鉉) : 예조, 이조판서, 중추부지사를 지냈다.
    - 윤병정(秉鼎) : 대사성, 이조판서, 돈령부판사를 지냈다.
    - 윤전(鐫) : 남인의 거물이며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윤행리(尹行履, 1741 辛酉生) : 문과(文科) 정조0년(177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윤기(尹箕, 1535 乙未生) : 문과(文科) 선조9년(1576)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윤길(尹○, 1564 甲子生) : 문과(文科) 선조26년(159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윤병정(尹秉鼎, 1822 壬午生) : 문과(文科) 철종2년(1851)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윤밀(尹謐, 1715 乙未生) : 문과(文科) 영조27년(1751) 정시 을과(乙科)
     윤탁(尹晫, 1569 己巳生) : 문과(文科) 선조27년(1594) 별시2 을과(乙科)
     윤시명(尹時鳴, 1634 甲戌生) : 문과(文科) 숙종13년(1687) 식년시 을과(乙科)
     윤섬(尹暹, 1561 辛酉生) : 문과(文科) 선조16년(1583) 별시 을과(乙科)
     윤이도(尹以道, 1628 戊辰生) : 문과(文科) 숙종5년(1679) 정시 을과(乙科)
     윤결(尹潔, 1517 丁丑生) : 문과(文科) 중종38년(1543)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20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9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12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24世
    섭(燮)
    25世
    재(在)
    26世
    호(鎬)
    27世
    영(永)
    28世
    상(相)
    29世
    현(顯)
    30世
    배(培)
    31世
    종(鍾)
    32世
    원(源)
    33世
    수(秀)
    34世
    성(性)
    35世
    -
    36世
    -
    37世
    -
    38世
    -
    39世
    -
    40世
    -
    41世
    -
    42世
    -
    43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世孫은 24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
    남원(南原)은 오늘날 전라북도 남원시 일원의 지명으로 16년(백제 온조왕 34) 무렵에 고룡군(古龍郡)이라 불렀다가 196년(초고왕 31)에 백제의 5방 중 대방군(帶方郡)이 되었다. 685년(신라 신문왕 5)에 9주 5소경의 하나로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5현을 관할하는 남원부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 지부사(知府事)로 고쳤다. 1310년(충선왕 2) 대방군(帶方郡)으로 강등되었다가 1360년(공민왕 9) 부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는 남원진영을 두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전라좌영을 설치하였다. 1740년(영조 16) 일신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라 4부 중 하나인 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년 남원 48방을 22개면으로 통폐합하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에는 남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남원시와 남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남원군이 남원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남원윤씨는
    1985년에는 8,768가구 37,845명, 2000년에는 10,117가구 32,73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2,42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