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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개성이씨(開城李氏)
    유래
     시조 : 이차감(李次감)
    시조 이차감은 고려 충숙왕 때에 녹사령(錄事令), 동정(同正)을 역임하고, 개성부윤(開城府尹)을 지내면서 가문이 개성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의 손자 문청공 이덕시(李德時. 이개)가 고려말에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지내면서 이성계를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자 이때 부터 후손들은 본관을 개성으로 하였다.
    선조는 청주이씨에서 분관하였다고 한다.
    인물
    조선시대에 이광세(李匡世, 4세손)는 현령을 지냈으며 아들 이순(李諄)은 참판(參判), 이지양(李之良)은 도순찰사를 역임하였으며 이종인(李宗仁)과 이사주(李師朱)는 부사, 이명봉(李鳴鳳)은 수군장군, 이영(李永)은 예빈사정(禮賓寺正), 이계남(李繼男)은 좌윤, 이창복(李昌馥)은 중추부사, 이성항(李性恒)은 참찬관, 이보관(李普寬)은 의금부사를 지냈고, 이동연(李東淵)은 참찬관(參贊官), 이희수(李熙秀)는 군수를 지냈으며 이로직(李魯稷)은 正言(正言), 이인환(李仁煥)은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그리고 이상한(李尙漢)은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고 이정무(李廷務)는 전의감정(典醫監正)이 되었다.
    또한 이현기(李鉉琪)와 이정수(李貞洙)는 참판을 지냈고
    이일원(李一元)은 군수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성일(李誠一, 1633 癸酉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애남(李愛男, 1602 壬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득일(李得一, 1607 丁未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이윤원(李允元)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제영(李悌榮, 1646 丙戌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춘백(李春白, 1650 庚寅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이응림(李應霖, 153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1년(1588) 식년시 삼등(三等)
     이담(李曇)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3년(1528) 식년시 삼등(三等)
     이정목(李廷○, 1666 丙午生) : 의과(醫科) 숙종15년(1689) 증광시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6명, 생원진사시 2명, 의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1930년 국세조사 자료에 의하면 개성이씨가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진목리,
    강원도 통천군 벽양면 신리,
    전남 보성군 복내면 진봉리,
    전남 장흥군 유치면 신월리,
    전남 나주군 산포면,
    전남 나주군 세기면 일원 등지이다.
    그 외에도 황해도 황주군 일원과 황해도 장연군,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해천리, 함경남도 안변군 배화면 동대리 등 이북지역에 개성이씨의 집성촌이 있었다.
    항렬자
    16世
    후()
    17世
    현(鉉)
    18世
    수(洙)
    19世
    병(柄)
    20世
    노(魯)
    혁(爀)
    21世
    경(敬)
    기(基)
    22世
    호(鎬)
    일(鎰)
    23世
    홍(洪)
    영(永)
    24世
    식(植)
    동(東)
    25世
    형(炯)
    충(忠)
    26世
    규(圭)
    곤(坤)
    27世
    종(鍾)
    진(鎭)
    28世
    -
    29世
    -
    30世
    -
    31世
    -
    32世
    -
    33世
    -
    34世
    -
    35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7世孫은 16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개성특급시
    개성(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현재 개성직할시가 되었다. 본래 고려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까지 송악군(松嶽郡)·송도(松都)·개경(開京)·부소갑(扶蘇岬)·동비홀(冬比忽)·촉막군(蜀莫郡) 등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부소갑(扶蘇岬)이라 했으며, 465년(백제 개로왕 11)에는 100년 동안 백제 영토였다. 555년(신라 진흥왕 16)에 신라가 점령한 이후 송악군(松嶽郡)으로 개칭되었고, 898년(효공왕 2)에 궁예가 잠시 태봉의 도읍으로 삼기도 하였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송악산(松嶽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풍군과 송악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5부를 설치하였다. 960년(광종 11)에는 개경(開京)으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개칭하였다. 조선이 개국하여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1467년(세조 13)에 개성부로 경기도에 편입되어 개성부윤(開城府尹)이 부임해 오다가 1906년 개성군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가 되었고, 1954년 10월 개풍군과 판문군(板門郡)이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1955년 개성시와 황해북도 개풍군·판문군이 통합되어 개성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61년 3월 황해북도 장풍군에 강원도 철원군 일부를 편입시키면서 개성직할시의 관할이 되었다. 2004년 1월 개성직할시를 황해북도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로 바꿨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개성이씨는
    1985년에는 1,530가구 7,212명, 2000년에는 1,683가구 5,47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28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