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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고부이씨(古阜李氏, 영주)
    유래
     시조 : 이경조(李敬祖)
    시조 이경조(李敬祖)은 고려 문종 때의 인물로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시호는 문헌공(文憲公)이다.
    이경조는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 최 충(崔 沖)이 설립한 사학(私學)의 효시인 구제학당(九齊學堂)에서 공부하였고,1065년(문종 19년) 문과에 급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올랐다.
    1071년(문종 25년) 김제(金悌)와 함께 서장관(書狀官)으로 송나라에 다녀왔고 문종~숙종에 이르기 까지 5왕을 섬긴 공으로 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이 되어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지고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에 이르렀다.
    후손들이 시조의 고향인 고부를 본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1928년 무진보를 만들 때 고부의 옛 이름인 영주(瀛州)를 본관으로 하여 영주이씨로 한적이 있었으나 1968년 무신보에서는 다시 고부이씨로 통일하였다.

    -시조묘는 부안군 줄포면 목상리에 있으며 음력 3월 15일에 향사한다.
    인물
    고려 예종 때의 인물인 이양빈(李陽賓)은 1106년 서북병마사(西北兵馬使)로서 윤관 장군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여 함주이하 6성을 수복하였다.
    명종 때의 이양승(李陽升)은 상장군을 지내면서 거란병을 격파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고, 강종 때의 이의(李儀)는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냈으며, 이연종(李衍宗)은 1351년 사헌두정을 거쳐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이담(李湛)은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하였고 이확(李擴)은 이성계의 건국을 반대하다 유배도중 살해되었다.
    조선시대의 이백첨(李伯瞻)은 세조의 단종 폐출에 불복하여 좌리공신(佐理功臣)의 녹권을 받지 않았으며, 이세번(李世蕃)은 조광조의 문인으로 기묘사화 때 조광조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유배되어 제주도에서 사망했다.
    또, 이희맹(李希孟)은 김종직의 문하생으로 경기감사를 지냈고, 1516년 도승지를 거쳐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희맹(李希孟) : 문과(文科) 성종23년(1492)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백첨(李伯瞻)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이구성(李九成, 1702 壬午生) : 문과(文科) 영조15년(1739) 정시 병과(丙科)
     이순명(李順命) : 문과(文科) 성종5년(1474) 식년시 병과(丙科)
     이태상(李台祥, 1756 丙子生) : 문과(文科) 정조19년(1795) 식년시 병과(丙科)
     이안국(李安國, 1664 甲辰生) : 문과(文科) 숙종41년(1715) 식년시 병과(丙科)
     이필윤(李必潤, 1647 丁亥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이명혜(李明惠)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이광수(李光秀, 1555 乙卯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이석남(李碩男, 1561 辛酉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명, 무과 7명, 생원진사시 17명, 음양과 1명, 주학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고부이씨는 주로 전북지방과 평남 그리고 제주도 일원에 분포하고 있다.
    전북지역에는 부안군 부안읍 일원, 부안군 줄포면 일원, 고창군 신림면 법지리 일대. 정읍군 소성면 일원,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등 지에 일부의 고부이씨가 있고, 평남 양덕군 쌍룡면 일원에도 많은 분포도를 이루며 운집하여 있다.
    족보발간
    -임인보 : 1782년(조선 정조 6년)
    -갑진보 : 1844년(조선 헌종 10년)
    -신사보 : 1881년(조선 고종 18년)
    -경술보 : 1910년
    -무진보 : 1928년
    -갑자보 : 1985년
    항렬자
    30世
    원(源)○
    31世
    술(述)○
    32世
    병(炳)○
    33世
    ○기(基)
    34世
    종(鍾)○
    35世
    ○수(洙)
    36世
    정(楨)○
    37世
    ○환(煥)
    38世
    재(在)○
    39世
    ○현(鉉)
    40世
    영(泳)○
    41世
    ○상(相)
    42世
    경(?)○
    43世
    ○주(周)
    44世
    석(錫)○
    45世
    ○순(淳)
    46世
    권(權)○
    47世
    ○희(熙)
    48世
    규(圭)○
    49世
    ○은(銀)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1世孫은 30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정읍
    고부(古阜)는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에 속한 지역으로 백제 때 고부군은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태인현은 대시산군(大尸山郡)과 빈굴현(賓屈縣), 정읍현은 정촌현(井村縣)으로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고부군으로 고쳤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영주군(瀛州郡)이라 하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951년(광종 2)에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019년(현종 10)에 고부군으로 환원되었고, 충렬왕 때에는 영광군(靈光郡)에 병합되었다가 곧 분리되었다. 1409년(태종 9)에 태산현과 인의현은 태인현으로 병합되었다. 고부군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의 발원지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지역 중의 하나이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全州府) 고부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북도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고부군의 일부가 정읍군에 편입되다. 1981년에 정주읍이 정주시로 승격 분리되었으며, 1983년에 내장면 일원과 소성면의 일부, 덕천면의 일부가 정주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정읍군과 통합하여 정읍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고부이씨는
    1985년에는 4,474가구 18,623명, 2000년에는 5,576가구 17,79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2,89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