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관중(李管仲)
시조 이관중(李管仲)은 금릉(金陵 : 김포의 옛이름)에서 여러대에 걸쳐 살아온 사족(士族)으로 조선시대에 기자릉(箕子陵) 참봉(參奉)을 거쳐 벼슬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병진보(丙辰普) 서문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김포에서 평안남도 성천(成川)군 현봉(玄峰)으로 피난, 정착하여 살면서 김포이씨로 하였다고 한다.
-묘소는 성천군 성천면 각후동에 있다.
인물
시조 이관중의 아들 이운선(雲善)은 한성판윤(漢性判尹)을 지냈고,
손자 이창(李倡)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금릉부원군(金陵府院君)에 봉해졌다.
11세손 이경화(景華)는 조선 정조 때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경화(李景華, 1721 辛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0년(1774) 식년시 삼등(三等)
이진악(李眞岳, 169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년(1729) 식년시 이등(二等)
이종겸(李宗謙, 1759 己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3년(1789) 식년시 삼등(三等)
이관술(李觀述, 1823 癸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5년(184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4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오보(庚午譜) : 1930년
병진보(丙辰普) : 1976년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김포
김포(金浦)는 경기도 서쪽 한강(漢江) 하구에 위치한 옛 김포군 지역의 이름이다. 고구려 때 김포는 검포현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김포로 고쳐져 장제군(長堤郡: 富平)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분리되어 감무를 두었으며, 1198년(신종 1)에 이르러 왕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현으로 승격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양천(陽川)을 합하여 금양현이라 하였고, 나중에 다시 양천은 금천에, 김포는 부평부에 합하였다가 1416년에는 다시 현으로 복귀되었다.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생부(生父) 원종(元宗)의 능인 장릉(章陵)을 양주로부터 이장함에 따라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경기도 김포군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양천군이 김포군에 통합되었고, 1934년에는 김포군의 일부였던 군내면이 김포면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 5월 1일 김포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95년 검단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같은 해 검단읍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1998년에는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김포이씨는
1985년에는 248가구 1,137명, 2000년에는 283가구 89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0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