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낙안이씨(樂安李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인미(李仁美) : 문과(文科) 세조6년(1460) 평양별시 삼등(三等)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
낙안(樂安)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樂安面)·외서면(外西面)과 보성군(寶城郡) 벌교읍(筏橋邑) 일대를 통칭하던 지명이다. 백제 때에는 분사군(分沙郡: 分嵯郡·夫沙郡·波知成)이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분차주(分嵯州)를 설치하고 귀차(貴且)·수원(首原)·고서(皐西)·군지(軍支)를 영현으로 두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분령군(分嶺郡)이라 했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낙안군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현종 9)에 나주(羅州)의 속군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낙안현으로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으며, 후에 군으로 승격하였다. 부사(浮槎)·낙천(洛川)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낙안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 낙안군이 되었다. 1908년(융희 2)에 군면 폐합이 실시되어 낙안군이 폐지되고, 내서·외서·동상·동하·초상·초하·읍내 등의 면은 순천군으로, 남상·남하·고상·고하 등의 면은 보성군으로 나누어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낙안이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2가구 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