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찾아서 ... |
![]() |
|
www.rootsinfo.co.kr |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 ![]() ![]() |
![]() 단양이씨(丹陽李氏)
유래
시조 : 이배환(李盃煥)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단산(단양의 옛이름) 사람으로 고려 태조의 삼국통일을 도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 되고, 문하시중(下侍中)에 올랐다. 그리고 후손에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고려 때 출사(出仕)를 지낸 10세손인 이방규(李方揆)를 중시조로 하였다. 이배환의 14손인 판서(判書) 이거경(李居敬)의 아들 이무(李茂)가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 1 등으로 단산 부원군(丹山 府院君)에 봉해짐으 로써 본관을 단양으로 하고 있다. 인물
조선 세조때 1465년 이맹지(李孟智)는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집의를 역임,연산군때 정란으로 용천
에 유배되어 그후 그곳에 세거하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중종때 중추부사(中和府使)를 지낸 이겸(李謙)은 기묘사화때 조광조(趙光祖)를 변호하다 파직되었으나, 영조때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선조때 이지시(李之詩)는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훈련원정(訓鍊院正)이 되었다가 문한(文翰)에 능하므로 동반직(東班職)에 전임, 주서(注書)가 되었다. 1583년에는 이성현감(利城縣監)으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목사 이경록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용인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태인의 모충사에 제향되었다. 조선시대 의병장 이립(李立)은 무과에 급제해 내금위(內禁衛)에 보직되고 1592년 임진왜란때 소사 싸움에서 공을 세워 훈련판관이 되어 호성원종공신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때 안준(安浚), 김우(金佑), 안종록(安宗祿)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 용골산성에 들어가 장사준(長士俊)을 죽이고 오랑캐를 크게 무찔러 전공을 세워 도독 모문룡의 상소로 명나라로부터 상품을 받았다. 이어 인산진첨절제사(麟山鎭僉節制使)가 되어 대계도(大鷄島)에서 포진하고 있다가 병사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정문이 세워졌으며, 1736년에 안주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종렬(李宗烈, 1756 丙子生) : 문과(文科) 정조7년(1783) 친시 을과(乙科)
이겸(李謙)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증광시 병과(丙科) 이희당(李禧戇, 1855 乙卯生) : 문과(文科) 고종16년(1879) 별시 병과(丙科) 이경호(李鏡昈, 1864 甲子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병과(丙科) 이석영(李錫泳, 1870 庚午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병과(丙科) 이일언(李日彦, 1860 庚申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식년시 병과(丙科) 이동운(李東韻, 1805 乙丑生) : 문과(文科) 순조25년(1825) 식년시 병과(丙科) 이거경(李居敬) : 문과(文科) 세종2년(1420) 식년시 병과(丙科) 이식(李湜, 1781 辛丑生) : 문과(文科) 순조14년(1814) 식년시 병과(丙科) 이덕수(李德秀) : 문과(文科) 선조6년(1573)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9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38명) 세거지
한반도의 최서북단으로 압록강 하구에 위치해 있는 평북 용천군.
바로 이곳이 단양이씨가 모여사는 곳이다. 이 일대는 압록강과 삼교천에 의해 이루어진 복합삼각주로서 토질이 비옥한 평야지대이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 지역의 옛 행정구역명으로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 堤川)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군(郡)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 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단양이씨는
1985년에는 3,537가구 14,343명, 2000년에는 5,122가구 16,21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9,001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