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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이씨(德山李氏)
    유래
     시조 : 이존술(李存述)
    시조 이존술(李存述)은 고려 명종때 덕풍(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호장을 지내서 후손들이 덕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그의 아들 이언후(李彦厚)는 야인정벌에 공을 세워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의 벼슬에 올 랐고, 손자 이극보(李克甫)도 대를 이어 검교대장군, 증손 이혁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등 3대 장수를 내며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인물
    고려훈신가문의 의리와 충절을 지켜 초야에 돌아간 이유(李愉)는 조선시대에 조선개국공신의 한사람인 하륜(河崙)의 간청에 못이겨 대호군으로 벼슬길에 나가 동북면 여진족반란진압에 공을 세웠다. 이유는 이를 계기로 태종 때에 판상주목사, 형조참판을 거쳐 함길도관찰사로 재직중 돌아가자, 임금이 제관을 보내 후히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40여명이 문과급제, 음사등으로 벼슬에 올랐고 충효의열(忠孝義烈)의 가풍을 굳건히 지켜 조정에 널리 알려진 효자, 효부, 열녀만도 10여명을 헤아린다.
    특히 중시조 이유(李愉)의 4 형제와 그 아들 이사맹(李師孟)의 5 형제가 모두 조선 초기부터 벼슬을 하며 충성을 하여 세종대왕이 이 가문을 가상히 여겨 "높은 집안의 많은 자손들이 반열에 참여하여 정사가 밝게 펼쳐진다.(高門詵柱列朝端 近日宣麻轉可觀)"라는 시 한수를 하사해 덕산이씨의 큰 자랑이 되어있다.

    근세엔 구한말 중추원 의관 이상만(李尙萬)의 아들 이종원(李宗源)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 중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하와이로 망명하여 안창호, 이승만과 독립운동에 투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채 1905년 망국의 한을 안고 자결했다. 그의 무덤과 묘비가 아직도 하와이 나루루공원에 있다고 한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진길(李震吉, 1561 辛酉生) : 문과(文科) 선조19년(1586) 별시 을과(乙科)
     이덕전(李德全, 1664 甲辰生) : 문과(文科) 숙종13년(1687) 식년시 병과(丙科)
     이번(李蕃)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병과(丙科)
     이의신(李義臣) : 문과(文科) 명종4년(1549) 식년시 병과(丙科)
     이사계(李師季) : 문과(文科) 세종14년(1432)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이사맹(李師孟) : 문과(文科) 태종14년(1414) 식년시 을과(乙科)
     이증문(李曾門) : 문과(文科) 세조5년(1459) 식년시 병과(丙科)
     이사증(李師曾) : 문과(文科) 세종1년(1419)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이경문(李景文, 1558 戊午生) : 무과(武科) 선조34년(1601) 식년시 병과(丙科)
     이광익(李光翼, 1636 丙子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경북 칠곡군 동명면 봉암동.
    덕산이씨가 5 백여년 터잡아 사는 옛마을이다.
    벼슬을 멀리하고 숨은 선비로 여생을 마친 입향조 이운현(李云顯)은 자신이 터잡았던 태봉산(台峯山)에 묻혔다.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그의 뜻을 기려 태봉재(台峯齊)를 세우고 향사를 받들며 조상을 섬기는 전통을 잇고 있다.
    천혜의 요새인 태봉산성이 북방을 가로막고 있는 이곳은 입향조 이운현 때부터 덕을 숭상하는 가풍이 이어져 후손들이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시시비비를 가려본 일이 없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
    덕산(德山)은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지명으로 본래 덕풍(德豊)·이산(伊山) 등 두개 현을 합한 명칭이다.. 이산현은 백제 때는 마시산군(馬尸山郡)이라 불리우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산군(伊山郡)으로 바뀌어 웅주(熊州: 公州)가 관할하였고, 금무현(今武縣)과 목우현(目牛縣)이 이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홍주(洪州: 충청남도 홍성군)의 관할에 있다가 후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하였다. 덕풍현(德豊縣)은 백제의 금물현(今物縣)을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금무현(今武縣)으로 개칭하였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덕풍현으로 바꾸어 이산현과 함께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5년(명종 2)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05년(태종 5)에는 두개 현을 병합하여 덕산현을 만들었고, 1828년(순조 28)에 덕산군으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에 속속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덕산면으로 축소, 폐지되어 지금은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덕산면(德山面)으로 남아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덕산이씨는
    1985년에는 1,732가구 7,355명, 2000년에는 2,215가구 7,19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30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