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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안이씨(遂安李氏)
    유래
     시조 : 이견웅(李堅雄)
    시조 이견웅(李堅雄)은 본래 경산(지금의 성주) 사람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토평하여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 평장사(平章事),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올랐다.
    그후 12세손까지 경산에 정착했으며, 수안이씨의 중시조로 꼽히는 13세손 이연송(李連松)이 충렬, 충선, 충숙 3왕대에 걸쳐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수안군의 영주로 봉해지자 후손들이 수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연송은 사재를 털어 황해, 평안 각 고을에 향교를 세우고 경서들을 간행하며 유학 보급에 앞장섰고, 원나라의 요청으로 원나라 병사를 이끌고 나가 전공을 세워 보답으로 받은 4만석의 곡식을 때마침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널리 돌보았다고 한다.
    인물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이단(李端)과 이위(李威), 삼중대광평장사를 역임하고 문무를 겸비한 현신(賢臣)으로 추앙받은 이연송(李連松) 등이 수안이씨 가문의 기틀을 다진 인물 이다.
    그후 이연송의 4세손 이인우(李仁祐)는 공민왕 때 군인으로 원나라의 세력을 쓸어내는 북정에 좌장군으로 출전하여 역전의 무공을 세웠으며,
    이장석(李長碩)은 좌정승에 올랐고, 이상선(李象先)은 감찰어사를 역임했고 이진(李晋)은 병부상서에 이르러 고려시대에 수안이씨를 빛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40여명이 관계에 진출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이름은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이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기와 무인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계종(李繼宗), 이두현(李斗鉉), 선조 때 효자정문을 받은 이복장(李福長) 등이 있다.
    조선 숙종 때 관서의 문장으로 명망이 높았던 이시항(李時恒)은 한때 조정에서 황해, 평안, 함경도 등 서북인들에게 30년동안 과거를 못보게 하자는 논의가 일자 동료 유생들과 함께 그 부당함을 상소해 논의를 중단시켰던 유명한 "관서변무소(辨誣疏)"의 주역으로 지역차별 철폐 시민운동의 선구인 셈이다. "화은집" "관서통지" 등 20여 권의 저술도 남겼다.

    현대 인물로는 효봉(曉峰)스님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법관으로 평양 복심법원에 판사로 재직 중 사형언도를 내린 사건이 훗날 오판으로 밝혀지자 법복을 벗고 입산하여 중이 되어 구도생활에 정진한 끝에 득도, 우리 불교계에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승열(李升烈, 1767 丁亥生) : 문과(文科) 순조11년(1811)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동욱(李東郁, 1854 甲寅生) : 문과(文科) 고종16년(1879) 식년시 을과(乙科)
     이두섭(李斗燮, 1852 壬子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식년시 병과(丙科)
     이기(李基, 1796 丙辰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병과(丙科)
     이지봉(李之鳳, 1796 丙辰生) : 문과(文科) 순조22년(1822) 식년시 병과(丙科)
     이익열(李益烈, 1744 甲子生) : 문과(文科) 정조8년(1784) 정시 병과(丙科)
     이익서(李益瑞, 1736 丙辰生) : 문과(文科) 정조1년(1777) 식년시 병과(丙科)
     이택(李澤, 1803 癸亥生) : 문과(文科) 순조34년(1834) 식년시 병과(丙科)
     이필(李珌, 1677 丁巳生) : 문과(文科) 숙종34년(1708) 식년시 병과(丙科)
     이소번(李昭蕃, 1611 辛亥生) : 문과(文科) 효종3년(1652)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7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6명, 무과 14명, 생원진사시 3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충남 보령군 청소면 진죽리는 남쪽에서 수안이씨가 가장 많이 사는 집성촌이다.
    이곳 보령에 수안이씨가 뿌리내리기는 조선 중엽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이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요산군으로 봉함을 받은 이기가 진죽리로 낙향하여 터를 잡았다.
    이 마을 이씨들의 주업은 논농사이고 근검과 절약으로 자녀교육에 힘쓰며 충효의 전통을 잇고있다.
    황해도 수안이 본 고장인 만큼 집성촌은 북녘에 더 많았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수안
    수안(遂安)은 황해북도에 있는 지명이다. 고구려에는 고소어(古所於)·장새(獐塞)였으며, 748년(신라 경덕왕 7) 장새현으로 개칭하여 서암군(栖巖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수안현(遂安縣)이 되어 곡주(谷州)에 속하였으며, 후에 다시 현령(縣令)을 두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는 수주(遂州)로 승격되었다. 1417년(태종 17) 수안군(遂安郡)이 되었다가, 1653년(효종 4) 잠시 현으로 강등되었었다.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연암면·공포면·도소면·수구면과 대오면의 일부지역을 연산군에, 율계면을 연탄군에 이관시키고 신계군 사진면의 신리·석교리·산북리·사이곡리를 통합하여 군경계를 조정하였다. 1954년 곡산군 서초리가 평원리에 흡수되었고 용포리의 일부를 좌위리로, 옥치리의 일부를 도전리로, 도전리·산북리의 일부를 용현리에 흡수하였다. 1963년 산북리·석교리의 일부를 분리하여 주경리를 신설했고 1974년 조양리를 옥치리에 통합시키고 조양리는 폐지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안이씨는
    1985년에는 3,541가구 14,099명, 2000년에는 5,539가구 17,67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0,76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