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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이씨(安城李氏)
유래
시조 : 이중선(李仲宣)
시조 이중선(李仲宣)은 중국 농서이씨 청륜계(靑倫系)의 맹선(孟宣), 중선(仲宣), 계선(季宣) 3형제 가운데 중씨(仲氏)로서 송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송나라 사신(使臣) 안도(安濤), 진목(陳睦)을 따라 고려에 들어온 뒤 문종의 청탁으로 세자, 세손 등의 사부(師傳)가 되고, 그후 경군호장(京軍戶長)이 되어 장민(長民)의 공으로 문하시랑에 올랐다. 이자의의 난 때 재상 왕국모를 따라 평정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올랐고, 4왕조에 걸쳐 벼슬을 지내다가 헌종 말에 이르러 치사(致仕)한 뒤 백하군(白夏君)에 봉해졌다. 백하는 안성의 옛이름 이므로 후손들은 안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인물
2세손인 이영(李永)은 고려시대의 인물로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뒤에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역임하고, 인종초에 지어사대사 보문각학사(知御史臺事寶文閣學士)가 되었으며 후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이희(李禧)는 1374년 명경과에 급제하고, 중랑장이 되어 수군(水軍)을 개편했으며, 이어 양광도안무사(楊廣道按撫使)로 나가 왜구방어에 공을 세웠다. 이경(李坰)은 1376년 문과에 급제하고, 1378년 삼중대광문하시중으로 평왜대장군(平倭大將軍)이 되었으며 1388년에는 추충정란보조공신(推忠靖亂補祚功臣)에 오르고, 안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유(李裕)는 우왕때 벼슬이 병부상서에 이르렀으나 이성계의 권위가 날로 높아가자 정몽주등과 함께 이성계를 제거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성에 은퇴하여 인생을 마쳤다. 조선시대 인물인 이숙번(李叔蕃)은 1393년 문과에 급제, 지승추부사(知承樞府事)를 거쳐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415년에 안성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세종때의 이무(李茂)는 1433년에 진사가 되고 육진설치(六鎭設置)와 이민국책(移民國策)에 의한 개척지도자에 선발되어 백호아대(百戶阿代)로서 북청에 들어가 백성을 다스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북방대족(北方大族)이라 할만큼 후손이 번창하여 입북파조(入北派祖)가 되었다. 인조때의 이죽림(李竹林)은 1618년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가 되었는데,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와 전투 끝에 전사하였으며, 이전은 임진왜란때 왕을 호종하다가 왜적과 역전끝에 전사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석복(李錫福, 1694 甲戌生) : 문과(文科) 영조6년(1730) 정시 병과(丙科)
이기남(李期男, 1535 乙未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병과(丙科) 이석록(李錫祿, 1687 丁卯生) : 문과(文科) 영조1년(1725) 정시2 병과(丙科) 이양현(李良鉉) : 문과(文科) 성종8년(1477) 춘당대시 병과(丙科) 이숙인(李叔仁) : 문과(文科) 성종23년(1492) 식년시 병과(丙科) 이형우(李亨宇, 1736 丙辰生) : 문과(文科) 정조16년(1792) 식년시 을과(乙科) 이최영(李㝡榮, 1836 丙申生) : 문과(文科) 고종17년(1880) 증광시 병과(丙科) 이협심(李協心, 1777 丁酉生) : 문과(文科) 순조4년(1804) 춘당대시 병과(丙科) 이숙번(李叔蕃, 1373 癸丑生) : 문과(文科) 태조2년(1393) 식년시 병과(丙科) 이충직(李忠直, 1558 戊午生) : 무과(武科) 선조35년(1602)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9명, 무과 17명, 생원진사시 20명) 세거지
-경기도 이천군 율면 석산리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오흥리 -강원도 이천군 방문면 경도리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 노하리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오주리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노정리 -평안남도 순천군 선소면 장평리 -함경남도 갑산군 진동면 양유리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판장리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중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안성
안성(安城)은 경기도 남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옛 안성군·죽산도호부·양성현이 통합된 지역이다. 고구려 때에는 내혜홀(奈兮忽)로 불렸으며, 초기에는 백제, 후에는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백성군(白城郡)으로 개칭하였고, 사산현(蛇山縣)·적성현(赤城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안성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천안에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1년(명종 2)에 감무를 두었으며, 1361년(공민왕 10)에 이 지역 사람들이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하를 막은 공으로 이듬해에 수주의 일부지역을 편입시켜 안성군으로 승격되었다. 1399년(정종 1)에 관할 양량부곡(陽良部曲)이 양지현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 13)에 안성은 충청도로부터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안성군, 1896년에 경기도 안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양성군과 죽산군이 폐지되어 안성에 병합되어 안성군이 되었다. 1937년에는 안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에 용인군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되었고, 1992년에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개칭되었다. 1998년 안성시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안성이씨는
1985년에는 4,258가구 17,546명, 2000년에는 6,186가구 19,73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1,948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