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석숭(李碩崇)
시조 이석숭(李碩崇)은 양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집안의 후손으로, 조선시대에 진사(進士)를 지냈다.
선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후손들이 이석숭을 시조로 하고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종남(李終男,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승철(李承哲, 1642 壬午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응남(李應男,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언귀(李彦貴, 1578 戊寅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시온(李時○, 1642 壬午生) : 무과(武科) 현종10년(1669) 정시 병과(丙科)
이급원(李及遠, 1805 乙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0년(1844) 증광시 이등(二等)
이현승(李玄承, 1829 己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5년(1849) 식년시 삼등(三等)
이태형(李泰亨, 1790 庚戌生) : 음양과(陰陽科) 순조7년(1807) 식년시
이의륭(李義隆, 1805 乙丑生) : 음양과(陰陽科) 순조27년(1827) 증광시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5명, 생원진사시 2명, 음양과 2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양주
양주(楊州)는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매성군(買城郡) 또는 마홀(馬忽)이 있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내소군(來蘇郡)으로 바꾸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태조 때에 한양군을 견주(見州)로 승격시키고, 1018년(현종 9)에 견주를 양주에 편입하였다. 1394년(태조 3)에 수도를 한양(漢陽)에 정하고, 한성부(漢城府)를 설치하게 되자, 한양부(漢陽府)를 동촌 대동리로 옮기고 양주(楊州)로 개편했으며, 얼마 후 다시 읍의 중심지를 견주(見州)의 옛 터(지금 양주시 고읍동 일대)로 옮기고 1413년(태종 13)에 양주도호부(楊州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430년(세종 12)에는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파주(坡州)와 고양군(高陽郡) 이외 영평(永平)·포천(抱川) 등의 5개 현을 관할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佛谷山) 남쪽 유양리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廣陵)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한성부 양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42년에 양주면을 의정부읍으로 승격시켰으며, 1946년에는 파주군의 남면을 편입하였다. 1963년 이담면을 동두천읍으로 승격하고, 수동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80년에 일부 읍·면을 분할하여 남양주군으로 신설, 독립시켰고 1981년 의정부읍을 시로 승격시켜 양주군에서 독립시켰다. 2000년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했고, 2003년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양주이씨는
1985년에는 286가구 1,268명, 2000년에는 243가구 83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72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