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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봉이씨(牛峰李氏)
    유래
     시조 : 이공정(李公靖)
    이공정(李公靖)은 고려 명종때에 금자광록대부 벽상삼한공신(金紫光祿大夫壁上三韓功臣)이다.
    원조 이두창(李頭昌)은 신라의 우장군(右將軍)으로 지략이 뛰어나 옥저(沃沮)로 하여금 양마 200필을 헌납하게한 공으로 신라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후손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공정은 문하시중으로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에 봉해졌고, 수지의(首智衣), 잠성(岑城), 우봉 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그곳에 살면서 본관을 우봉으로 하였다.
    인물
    2세손인 이자성(李子晟)은 고려시대의 인물로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의 이승건(李承健)은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이지신(李之信)은 판결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상(李翔)은 유일(遺逸)로 벼슬에 올라 1661년 자의(諮議)를 거쳐 정언(正言), 지평(持平), 진선(進善), 집의(執義) 등을 역임했고, 숙종 때 형조와 호조의 참의, 대사헌을 지냈다.
    이숙은 숙종때에 우의정을 지냈고, 이익(李翊)은 이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이만성(李晩成)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이재는 1702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승지, 부제학, 한성부 우윤 등을 거쳐 대제학에 이르렀는데, 조선후기 성리학계의 대가로서 당시 낙론(洛論)의 대표적 학자로 일컬어졌다.
    이령은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자결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가족과 함께 길상산(吉祥山)으로 피난 도중 적을 만나 아버지와 함께 대항했으나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를 업고 도망하다가 적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부인과 형수도 자결했다. 이에 충절로서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한편, 이유겸(李有謙)도 병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뒤 이조참의에 이르렀고, 이채(李采)는 174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호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이광문(李光文)은 180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라도관찰사, 형조, 이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에 이르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호익(李鎬翼, 1844 甲辰生) : 문과(文科) 고종8년(1871)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승건(李承健) : 문과(文科) 성종13년(1482) 진현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이만성(李晩成, 1659 己亥生) : 문과(文科) 숙종22년(169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당(李塘)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여주별시 을과(乙科)
     이제원(李濟遠, 1709 己丑生) : 문과(文科) 영조12년(1736) 알성시 병과(丙科)
     이과(李果, 1735 乙卯生) : 문과(文科) 영조50년(1774) 증광시 병과(丙科)
     이용구(李容九, 1859 己未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 병과(丙科)
     이집(李緝) : 문과(文科) 성종6년(1475) 친시 병과(丙科)
     이세용(李世用, 1845 乙巳生) : 문과(文科) 철종14년(1863) 정시 병과(丙科)
     이광정(李光正, 1780 庚子生) : 문과(文科) 순조13년(1813)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12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3명, 무과 8명, 생원진사시 78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분포되어 있다.
    충북지역에는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와 개심리에 집성촌이 모여있다.
    경상도에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두류리, 경북 문경군 가은읍 작천리, 문경군 마성면 등지에 집성촌이 있으며, 문경군 가은읍 작천리가 대표적 분포지이다.
    이외에 경기도 양평군 일원과 황해도 금천군 좌면 고산리에도 우봉이씨가 살고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금천
    우봉(牛峰)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에는 우잠(牛岑: 牛嶺·首知衣)이라 불렸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우봉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현(平州縣: 平山)에 예속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경기도 개성부에 예속되었다. 1395년(태조 4)에 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황해도에 속하였다. 1469년(예종 1)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1652년(효종 3)에 강음(江陰)·우봉과 합쳐 금천군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음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우봉(牛峰)·토산(兎山)·강음을 금천군으로 통합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도·북도로 분할됨에 따라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우봉이씨는
    1985년에는 4,278가구 17,513명, 2000년에는 6,388가구 20,52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3,902명으로 조사되었다.